봄이면 산나물과 근채류를 캐고
여름이면 약재로 쓰는 꽃을 채집했다
가을에는 열매를, 겨울에는 목근류라 해서
주로 버섯을 캐며 살았다

북천(北川)과 소양강 물줄기는 약초꾼의 삶을 닮았다
예전엔 약초꾼도 처방전 내는 민간의학으로 평가, 이젠 약초처럼 귀해져

아침부터 봄을 안고 내린 비는 어느새 작살비가 되어 한바탕 푸념이라도 하는 듯 퍼붓고 있었다. 지난밤 소리 없이 꽃망울을 터뜨린 벚꽃은 봄 아지랑이가 몹시도 그리웠던지 촉촉한 대지에 살포시 이파리를 떨어뜨린다.
이렇게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경동시장 상인들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진다. 약초꾼 취재에 앞서 들른 경동시장을 둘러보니 국내 한약재의 약 70%가 유통되는 우리나라 전 한약방의 약재 공급원이라는 명성도 이제는 옛말이 된 듯싶었다.
경동시장은 1960년대 말부터 청량리 역을 중심으로 전국각지에서 채집, 생산된 한약재를 취급하는 약재상들과 약초꾼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70년대 이후 경제 발전과 더불어 질적, 양적 팽창을 거듭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제일의 한약재 시장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는 경기침체로 약재소비가 줄어들면서 적자를 면치 못했고 지금은 1년이면 20~30개 점포가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2대째 경동시장에서 약재상을 운영하는 문삼식(37세) 씨는 “90년대 이후로 매해 적자를 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하도 장사가 안 되다 보니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시장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흉년에 인심 들기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실상이 이러했다. 경동시장에서 유통되는 한약재 중 70%는 중국산으로 국산약재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대부분의 약재가 대량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약초꾼의 흔적을 더듬어보려 찾아간 경동시장에서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예부터 ‘꾼’이라 하면 오랜 세월 하나의 일에 매달려 주로 발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사람을 의미한다. 이네들의 거칠고 억센 삶은 ‘구식’처럼 느껴지지만 결코 멀리할 수 없는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다.

◀ 샛노란 꽃을 피운 생강나무. 생강나무는 손발이 찬 사람에게 효과가 좋다.

급박한 세상에서 고유한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 힘겹고 미련스런 일일 수도 있고 세상 물정 모르는 구식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선조들의 억척스러움과 함께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약초꾼이 그러했다. 묵묵히 우리의 산천을 누비며 약초를 캐 식구들 입에 풀칠하고 자식들을 가르쳤다. 욕심이 많아도 안 되고 게을러서도 안 된다. 성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약초꾼이다.
다음날 약초꾼을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발걸음을 재촉해 찾은 곳이 바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이다. 이곳은 “이제(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라는 말이 생길정도로 꽃다운 나이에 군복무를 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는 악명이 높은 곳이다. 그만큼 산세가 깊고 타 지역에서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3시간 넘게 달려온 버스에서 내리자 멀리 대암산과 봉화산이 눈에 들어왔다. 원통면은 지리적으로 소양강의 지류가 합류하는 곳이다. 강원도 중부지역을 남서류하며 춘천 북쪽에서 북한강에 합류하는 소양강은 인제군 서화면의 북쪽 무산(巫山)에서 발원해 설악산의 북천(北川)과 방천(芳川), 계방산의 내린천(內麟川) 등의 지류와 합류한다.
소양강은 강원도 내륙산지를 흐르기 때문에 유역에는 평지가 적고, 유로(流路)는 굴곡이 심하다. 그럼에도 거침없는 북천의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소양강의 모습은 어딘지 약초꾼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15년째 약초꾼 생활을 하고 있는 권혁조(42) 씨를 만났다. 후덕한 인상의 그는 먼 길 온 손님에게 오미자차를 건넸다. 혀끝에 맴도는 향도 좋았지만 어느새 노곤한 여정의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그렇게 차향에 취해있을 때 쯤 권혁조 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 우리나라 약초는 그 약성이 뛰어나다. 자연의 모진 풍파를 견디면서 영양소를 축적하고 담금질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약초꾼이라 하면 밑바닥 일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일 자체도 힘들고 벌이도 신통치 않기 때문에 다들 기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예부터 약초꾼은 민간의사로서 한약재를 처방하기도 했고 찾아오는 환자를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때만해도 약초꾼들은 직접 캔 약초로 환자들을 돌봐주고 치료해주었다. 그러던 것이 6·25를 거치며 미국의 영향으로 양약이 보급되자 빠른 효과와 간편함으로 인해 민간에서 조차 외면 받다 결국 민간의학 자체가 사장된 것이다.
“오늘날의 의료계는 민간의학을 부정하고 있지만 실상 수백 년에 걸쳐 검증된 치료법이나 민간처방은 우리생활 근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는 약초야 말로 바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약초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성이 뛰어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 이유는 자연의 모진 풍파를 견디면서 스스로 영양소를 축적하고 담금질을 하기 때문이다.
보통 약초꾼은 산에 오를 때 세 명의 약초꾼이 짝을 지어 함께한다. 혼자서 산에 오르는 것은 위험하고 둘이 갔을 경우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귀한 약초를 발견했을 때 탐욕으로 죄를 짓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렇게 새벽 4시부터 산행을 시작하면 산세를 살피고 지리적·지형적인 조건을 파악해서 약초를 찾아 나선다. 순전히 몸에 베인 감으로 약초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1년에 2백일은 산에서 보낸다. 장마와 폭설이 내릴 때 빼고 거의 대부분을 산에서 보내는 것이다. 이런 약초꾼들에게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 금기가 전해진다. 이유인즉 개고기를 먹으면 ‘호사(虎死)’ 할 팔자라고 해서 호랑이에게 물려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식경 정도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침부터 흐렸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게 개어있었다. 따스한 봄볕은 인적 드문 산골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었고, 오랜만에 흙길을 밟으며 봄 내음에 취해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을까? 약초꾼의 발걸음은 확실히 다르긴 다른가보다.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이미 저만치 앞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해 산언덕을 오르니 길가에는 쑥과 냉이가 보였다.
권혁조 씨는 “냉이는 지혈제로 많이 쓰였습니다. 예전에 전쟁터에서 지혈제가 부족할 때 이 냉이를 부상병들에게 먹이곤 했었죠. 쑥도 이맘때 캐서 먹는 것이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합니다.” 라고 설명했다.

◀ 두통·치통·생리통에 듣는 알약 한 알보다 아픈 부위에 따라 다르게 먹는 약초 한 뿌리가 우리를 더 건강하게 회복시킨다.

우리네 조상들은 순천절물(順天節物)이라 해서 자연의 법도에 순응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우며 살았다. 약초꾼들도 마찬가지다. 봄이면 산나물과 근채류를 캐고 여름이면 약재로 쓰는 꽃을 채집했다. 가을에는 열매를, 겨울에는 목근류라 해서 주로 버섯을 캐며 살았다. 이처럼 자연의 조화를 거스르지 않는 선조들의 지혜는 약초꾼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삼정(三情)’이라 해서 약초가 효험을 보기위해서는 ‘약초를 캐는 사람의 정성’, ‘약초를 처방하는 사람의 정성’, ‘약초를 먹는 사람의 정성’이 있어야만 그 약효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네 약초꾼들은 언제나 약초를 캘 때면 성심을 다했다. 가장 적절한 때에 약초를 캐고 온전한 법제(약초의 독성을 제거하는 것)과정을 거쳐 안전하게 약초가 전달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약초꾼을 천직으로 알고 생활하는 진정한 장인정신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얘기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산 약초가 국산으로 둔갑하고, 법제 과정을 완벽히 거치지 않은 약초가 유통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장삿속 챙기기에 바쁘고 인색해졌다. 그렇게 자연을 거스르고 산을 잊고 지내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심약해지고 병들어갔다.
요즘은 마음이 답답해서 생기는 ‘신경성’ 병증이 참 많다. 양약에서는 일회성 처방으로 그치고 말지만 약초꾼들은 그것 역시 우리 산에서 나는 약초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한 것도 몸이 아픈 것과 같은 큰 질병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옛말에 우리 산하에는 모든 병을 다스리는 약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양한 약초가 조상들의 병을 치유해왔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고 신약이 개발 될수록 병은 더 많아졌고 사람들은 더욱 약해져만 갔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우주만물의 한 부분이고 자연의 일부임을 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약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대지의 정을 느꼈기 때문인지, 진정 산과 닮은 이를 만나서인지는 몰라도 어느새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 새끼손톱 만한 봉오리를 매단 버드나무. 진통·해열제인 아스피린의 성분이 바로 이 버드나무이다.
<이지희 기자>  edelweiss317@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