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실천

정신의 힘 삶의 가치

이 행 자 / 대한YWCA연합회 회장

지난 어버이날 미국에 사는 아들 내외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특히 며느리가 보내준 글은 나를 무척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평소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던 며느리가 편지 글을 통해 전해준 사랑의 마음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비록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눈 대화는 아니었지만 그 편지는 며느리와 나와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1세기를 맞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세대 간의 단절이니 가족 간의 단절 문제를 거론합니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는 인터넷이나 무선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며 통신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찬양하면서 정작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은 소통하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이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10%, 중학생의 17%, 고등학생의 22%가 하루에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단 1분이라고 사실입니다.(2002 청소년백서)
또 2004년 대학문화신문사가 대학생 6백6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32%가 아버지와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세대간의 단절, 가족간의 단절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것일까요? 혹자는 우리나라 유교문화를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또 일제 식민지 시대와 군부독재 정권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나 학교의 소통 방식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상명하달식의 소통구조가 자리를 잡아왔다는 것입니다. ‘~해라, ~하지 마라’의 소통방식이 서로 간의 대화를 불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통의 방식이 가정에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입니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과 아우 사이에서도 윗사람의 권위를 중심으로 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또 수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스팸 메일처럼 상대방의 대화 의사와 상관없이 내 할 말만 쏟아내는 식의 대화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소통의 단절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소통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말(言)을 회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고운 말 바른 말을 생활화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의 확산은 우리의 대화문화를 바꿔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의 형식까지 바꿔놓고 있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고 공력을 아낀다는 차원에서 말을 짧게, 최대한 생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게 세상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말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올바른 소통을 위해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존칭어와 경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기르는 일일 것입니다.
또 경청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대화의 물꼬를 트고 소통하고자 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상대방이 나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찾는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힘든 순간 그 친구와 당신은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거의 대부분 그 친구가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힘든 부분을 같이 힘들어 해주고 당신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는 그 친구에게 당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 더 큰 힘을 얻을 것입니다.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드는 대화는 이처럼 말하기보다는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보다는 상대방을, 나의 생각보다는 상대방의 생각을 더욱 존중하는 태도를 갖출 때 우리는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YWCA가 전국의 10만 회원들과 아침식탁캠페인을 하는 것은 바로 가족 안에서 이런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아침 밥상에 온 가족이 모여 서로 격려하는 말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나눔으로써 소통을 이루어 보자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여는 작은 실천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바꾸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내일은 가족과 함께 아침식탁을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이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