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근로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16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18일) 등 각종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이렇게 기념일이 많다 보니 여러 가지 행사가 뒤따르기 마련이고, 그 행사도 다채롭게 한다. 행사를 다채롭게 하는 거야 그리 나쁠 것은 없지만, 과연 그 본질과 의미를 제대로 알고 행하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얘기를 구태여 끄집어내는 것은 각종 기념행사가 형식적인 측면으로 치우치지 않나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인심이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현실에서 자신의 가족과 가정에 대하여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날·어버이날이라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마지못해 체면치레를 해왔던 것은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부모 자식간의 관계나 부부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3월 15일자 중앙일보에 실려 있는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2003, 2004년 실시한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와 ‘국제사회조사기구(ISSP)의 설문조사 자료’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기혼자 중 부모와의 동거율은 미국·일본 등 29개국의 평균보다 낮고, 부모를 만나는 횟수도 다른 나라의 절반 이하’라고 한다. 특히 ‘부모를 만나는 횟수는 29개국 가운데 최하위’라고 한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 가족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부가 지난해 9~12월 혼인 중이거나 이혼 경력이 있는 성인 남녀 6천1백56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 10명 중 3명은 부인으로부터 비아냥 등 정신적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한다. 남편들 셋 중 하나는 아내에게 구박당하는 셈이다. 물론 아내의 경우가 더 심하겠지만, 이제 전통적 가장의 의미는 점점 사라져 가고 남성 우위에서 남녀평등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혼란이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모 일간지에 ‘2년 전 명예퇴직한 뒤 생계를 부인에게 맡기고 가사를 책임지고 있는 48세의 심 모씨가 저녁때면 집을 나와 편의점에서 혼자 끼니를 때우는데, 이유인 즉 돈 못 버는 남편 꼴 보기 싫다며 부인이 식탁에 함께 앉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런 사람은 극히 일부이겠지만, 이 기사를 읽고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부부 일심동체요 동고동락(同苦同樂)’이란 말은 옛 말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어머니는 어머니다워야 하며,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여성부에서 인터넷 홈페이지 ‘평등 어린이 세상’ 코너를 통해 ‘아빠와 엄마의 차별’ 사례 19가지를 게재하였다가 네티즌의 항의와 비판이 거세지자, 4월 29일 해당 메뉴를 삭제하고 사과한 일이 있었다.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겠지만, 하는 짓이 어찌 이렇게 치졸한가? 아버지들을 몰아붙이는 듯한 표현방식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보면, ‘자식이 효도하면 부모가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라는 구절이 있다. 너무나도 옳은 말이다. 우리는 이 말을 잊지 말자. 『미암일기』에 가정의 화목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부인이 중구(重九:중양절)의 명절이라 간소한 잔치를 베풀고 죽매와 말덕을 시켜 해금을 타게 하자, 경렴(景濂)·관중(寬中)·변간(邊澗)이 차례로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우리 부부는 매우 즐거워했고 모자(母子)도 역시 즐거워했다. 관중이 짤막한 시 한 편을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어버이 모신 잔치 자리에 / 가을바람 산들거리고 햇빛 비치네 / 거문고 가락 노랫소리 흥겨우니 / 이 모임 백년 두고 기약을 하세’라 하였고, 경렴이 차운(次韻) 하기를 ‘당상(堂上)의 백발 양친 함께 모시고 / 때때옷 입고 춤을 춥니다 / 온 집안이 한없이 즐거우니 / 이밖에 또 무엇을 기대하리요’라 하였고, 내가 차운하기를 ‘임금의 은혜를 받드는 이 날 / 국화를 술에 띄우는 때로세 / 5, 6 명의 지친(至親)이 한 회당(會堂)에 모여 / 함께 태평세월 즐기누나’라 하였고, 부인이 차운하기를 ‘남북으로 나뉘던 그날 / 이 때가 있을 줄 어찌 알았으리요 / 중구라 좋은 철에 모이고 보니 / 천리 밖 약속이나 있는 것 같네’라 하였다. 대개 경렴이나 변간이 모두 천리 밖에서 온 때문이었다. 해가 저물어서야 마침내 파했다.”
유희춘의 가족들이 중양절(9월 9일)에 모여 시를 지으며 즐겁게 보낸 내용이다. 유희춘이 가족을 사랑하고 가정의 화목을 중시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안씨가훈(顔氏家訓)』에 ‘부부가 있은 뒤에 부자(父子)가 있고, 부자가 있은 뒤에 형제가 있으니 한 집안의 친족은 이 세 가지뿐이다. 이로부터 나아가 9족(九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3친(三親:부부, 부자, 형제)에 근본 하였다. 그러므로 인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니 돈독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가슴에 새겨두기를 바란다.
가족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지낸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모두 가정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자.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