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부의식, 천민자본주의의 광기가 떠도는 공간
70년대 서울은 님비현상과 소시민 이기주의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참으로 기묘한 세계’에 던져져 있고 ‘뒤죽박죽의 개백정 문화’에서 살고 있다”

공업화 우선의 경제개발 정책은 농촌 경제의 붕괴와 이농현상을 불러왔다. 서울로 서울로 모여드는 이농민들에 의해서 서울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울 변두리가 갑자기 서울의 부심으로 탈바꿈하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곳곳에서 목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서울의 영역확대와 새로운 공간배치에 의해서 서울시민들의 삶은 변모할 수밖에 없었다.
최인호의 단편소설 <미개인>은 서울로 새롭게 편입된 남서울 변두리 S동을 배경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S동은 “한마디로 요란스런 동네”라고 주인공이 밝히고 있듯이, “한편에선 부르도저가 왕왕거리며 산턱을 깎아 내리면서 단지를 조성하고 있었고, 그런가 하면 한쪽에선 농촌 특유의 분뇨냄새가 풍겨지고 있는” 거리였다. 거리 양옆으로 간이막사 같은 건물이 늘어서있고, 석유를 파는 노점상과 정결한 느낌을 주는 주유소가 함께 서있고 여관과 터키탕이 세워져 있었다. 또한 드문드문 양지바른 곳에는 이장이 끝나지 않은 묘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S동은 과거와 현재 혹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그런 조화로운 공간이 아니었고 뭔지 모를 광기가 휘젓고 다니는 혼돈스러운 공간이었다. 분묘이장 공고 기일이 끝난 후 주인 없는 분묘를 부르도저로 깎아 내는 것을 보면서 정선생은 “저것이 파괴일까, 건설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화자인 나는 “이 마을에 일관된 흔들거리는 광기는 바로 저렇게 무너뜨리고 죽은 자를 디디며 산 자가 일어서는, 죽은 자들 무리에 뿌리를 내리고 새 나무가 자라나는 무덤자리 위에 산자의 거실이, 목욕탕이, 꽃밭이, 정지되는, 어제의 것은 산 자에 의해서 사라져 가는 그런 데서 기인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화자의 S동이 가지고 있는 광기를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 이 동네를 휩싸고 도는 광기는 바로 미친 듯이 뛰어오르는 땅값 때문이었다. 서울로의 편입은 곧바로 지가상승을 불러왔다. 버스노선이 연장되고, 새로운 소형 문화주택이 밭 한가운데 서기 시작하고, 모두가 신흥 재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S동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아우성치게 되었다. 여기서 S동을 휩싸고 도는 광기의 정체가 졸부의식과 천민자본주의라는 것을 쉽게 읽을 수가 있다. 급속한 경제개발로 탄생한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의 기본적인 속성이 S동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중산층은 “날마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냉장고를 월부로 구입해야겠다는 생각, 계를 몇 구찌 더 들어서 딸애 시집 갈 때 다이아몬드 큰 카라트로 맞춰주어야겠다고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중략>……인생을 산다는 것은 험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그리고 그 험한 인생을 자기들이 용케 이겨내고 있다는 긍지를 느끼기 때문에 어떠한 나쁜 짓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박태순, 「전태일 사건 끝나지 않았다」, 『다리』 1971.7) S동의 원주민들이 검은 선글라스와 정장차림에서 이방인에 대한 경계와 배타성을 읽을 수 있다.
S동 주민들의 성격은 화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문교부의 탁상행정에 의해서 샛강 건너 음성나환자촌 개미마을의 아이들이 S동 국민학교로 편입하게 된다. 당연히 S동 아이들과 개미마을 아이들이 충돌을 하게 되고, 개미마을 소년에게 S동 아이가 이마를 물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S동 학부모들은 벌떼처럼 학교로 몰려와 개미마을 아이들을 쫓아낼 것을 요구한다. “나환자라구요. 이보시오, 선생. 고상한 말을 쓰지 마시오. 당신만큼 우리도 문화인인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나환자가 아니라 문둥이요. 더럽고 축축한 문둥이 새끼요. 그럼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그 애들은 더럽고 축축한 문둥이 애들이 아닙니다.……<중략>……필요 없어, 이 더러운 문둥이 새끼들, 아주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둬라. 그는 소년의 목덜미에서 손을 풀었다. 너희들 부모들한테 가서 전해라.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난 기쁨을 감사하라고.” 그러나 이렇게 단순한 논쟁만으로 S동 주민들이 개미마을 아이들 문제를 끝낼 수는 없었다. S동 주민들을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전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정선생은 숨을 헐떡이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 애들을 죽일 것이요. 괴롭히고 장난감처럼 학대하다가 그들의 심장을 긁어갈 것이오.” S동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학교로 등교시키지 않고 하숙집에서 주인공을 쫓아내는 등 물리적인 시위를 시작한다. 이러한 주민들의 집단행동은 결국 개미아이들이 샛강을 건너는 거룻배를 없애고 아이들과 주인공을 집단 린치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우리는 참으로 기묘한 세계”에 던져져 있고, “뒤죽박죽의 개백정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주인공의 자괴감을 통해서 70년대 서울시민들의 내면풍경이 님비현상과 같은 야만적인 소시민 이기주의로 채워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70년대 서울은 한편에선 산턱을 깎아 단지를 조성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농촌의 분뇨냄새가 풍겼다.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