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재 걸 / 시인, 언론인

‘감성공화국’의 위대한 왕자가 돼라

젊은 날의 대학시절을 필자는 ‘불과 물의 이중주(二重奏)’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 핵심은 아마도 감성(感性)과 이성(理性)의 혼돈상태를 한마디로 뭉뚱그리고자 함에 있었을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계산된 이성보다는 절제할 수 없는 감성일변도의 초록빛 젊은 날들에 대한 나름의 옹호와 예찬이 속뜻이었던 것 같다.
젊음의 순수성이란 계산되지 않은 원초적 감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에 반해 감성의 대칭점에 선 이성이란 이리 재고 저리 재는, 치밀한 자기계산과 동의어쯤 된다는 생각이다. 감성이 직선(直線)이라면 이성은 곡선(曲線)이라고 보는 필자의 생각도 이러한 데서 연유한 다(물론 이와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나의 사안에 부딪쳤을 때, 감성이라는 직감적 잣대가 아닌, 이것저것 따져보고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는 복잡한 심리과정(이른바 이성적 접근)을 염두에 둔다면 필자가 말하는 직선과 곡선의 의미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젊은 날의 위대함은 때 묻지 않은 감성에 있다’는 말은 이제 열번 백번 강조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그것은 감성의 순수성을 오오래 지켜가는 일이야말로 ‘곡선의 삶’이 아닌 ‘직선의 삶’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직선의 삶이란 한마디로 인간적인 삶, 그 자체다.
반면에 곡선의 삶이란 오늘날 우리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비인간적·반윤리적 삶의 양태, 더 나아가 금시대가 보여주고 있는 반인륜적·반자연적 문화양상의 총체성을 두고 이름이다. 이것들은 소위 이성적 판단이라는 곡선적 접근으로 배태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마디로 감성이 선(善)이라면 이성은 악(惡)이 돼버린 세상이다. 그런데도 초록빛 순수 감성기(感性期)를 오오래 지켜갈 생각은 않고 그곳으로부터 한시바삐 빠져나오려 모두가 안달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주변에서 너나없이 ‘감성공화국’의 왕자님들에게 “저 오염된 ‘이성사회’로 남보다 한발 빨리 들어서라”고 일상적으로 부추긴다.

물론 어차피 부딪치고야 말 그대들의 사회적 진출을 무작정 부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남루한 의상처럼 순수감성까지도 벗어던지라는 식의 ‘출세지상주의’는 오염된 악의 세계로 어서 빨리 뛰어내리라고 그대들을 윽박지르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미래를 한발 앞서 내다보는 사람들은 젊음의 순수감성이 시대적 방부제(防腐劑)임을 익히 알고 있다. 조직의 활성화, 더 나아가 사회적 순화를 위해 젊음의 수혈이 필수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젊음의 수혈을 통해 진정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젊음의 고유자산인 순수감성을 충전하려는 것이다.
이제 순수감성이 최고의 경쟁력인 동시에 최대의 덕목으로 부상한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했다.
‘감성공화국’이 젊음의 개인적 차원이라면,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것이 사회적 차원의 ‘시인공화국’이다. 시심의 원천이 감성인 것과 무관치 않다. 자신의 순수 감성기를 얼마만큼 오래 지켜 가느냐는 것은 그대들의 자유이지만, 시인공화국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 기준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지닌 감성지수(感性指數)가 어느 선은 꼭 유지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감성지수는 젊은 날 자신에게 부여된 천연자원(순수감성)을 어떻게 간직하고 관리해 왔느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감성지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의 충실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젊은 것 같으나 돈과 출세라는 사회적 타락태와 쉽게 영합한 나머지, 감성지수가 메마를 대로 메마른 애늙은이들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사회는 지금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산문적 삶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자신의 주의·주장만 옳다고 외치는 산문적 접근이야말로 사회적 혼란의 주범이다. 자정작용이 마비된 사회는 미래가 없다. 그러나 시심이 충만한 운문적 접근은 우리사회를 정화시키고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감성과 시심이 넘쳐나는 운문적 삶이야말로 우리 젊은이들을 경직된 타산에서 벗어나 우리사회를 지켜주는 진정한 방부제 역할로 인도 할 것이 분명하다.
윤재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