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 그리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등이 우리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과 중국이 치밀한 계획 하에 우리의 역사를 자기들 멋대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망언에 우리는 ‘사후약방문’격으로 대처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과 중국의 역사인식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묻곤 한다. 이 질문에는 여러 답변이 있겠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답변으로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고 한 카아(E. H. Carr)의 말이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을 했을까? 조선시대는 유교를 국시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유교적 역사의식의 전통을 형성해온 『춘추(春秋)』의 정신을 말했을 것이다. 유교에서 바라보는 역사는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거나 기록을 모아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역사란 지나간 일의 선악과 시비를 평가하고, 나아가 이 평가를 현재와 미래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었다. 지나간 일을 평가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면 역사는 공정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정한 역사기록을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이었다. 공정하지 못한 역사기록은 우리에게 결코 어떤 교훈도 줄 수 없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공정하게 역사를 기록하는 것, 이것이 『춘추』의 정신이다. 이를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한다.
역사를 통해서 후대의 평가를 받고, 동시에 현재의 삶 속에서 후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것, 이것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유교식 답변이다.
중종(中宗) 때 기묘사화가 일어났었는데, 이때 채세영(蔡世英)은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이었다. 그는 조광조(趙光祖)가 체포되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대궐로 들어가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에게 ‘어찌된 일입니까?’하고 물으니, 정광필 역시 그 내막을 자세히 몰랐으므로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채세영은 다시 남곤(南袞)에게 물으니, 남곤은 대답하기 곤란한 듯 우물쭈물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임금 앞에 이르자 정광필이 채세영에게 ‘사관은 사실대로 기록하라’고 했다. 채세영이 붓을 들고 임금에게 간절히 간하면서 ‘조광조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려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였다. 그러나 조광조의 죄를 정확히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채세영이 붓을 든 채 한자도 적지 않고 버텼다. 그래서 김안로(金安老) 일파인 승지 김근사(金謹思)가 채세영이 들고 있던 붓을 빼앗아 자신이 쓰려고 하자, 채세영이 김근사로부터 붓을 빼앗아 잡으며 말하기를 ‘역사를 기록하는 붓은 아무나 잡을 수 없다’고 하였다. 채세영은 임금에게 다시 간했고, 좌우에 있던 신하들은 눈을 피하거나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기개(氣槪)있는 사관(史官)은 올바른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이렇게 하였다. 이런 사람들의 의기(義氣)있는 행동을 어찌 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암일기』를 보면, 유희춘이 역사를 상고하여 진실을 밝히는 내용들이 많다. 그 중 하나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백(李白)이 친구와 더불어 채석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손으로 달 그림장를 잡으려고 한 일은 있었습니다만, 물에 빠져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에 이백의 일가 이양빙(李陽氷)이 당도(當塗) 고을 수령이 되었는데, 이백이 그에게 가서 몸을 의탁했고, 숙종(肅宗)이 좌습유(左拾遺)의 직으로써 불렀었는데 그때는 이백이 이미 죽고 난 후였습니다. 그 후에 관찰사가 이백의 손녀 두 사람을 돌보아주었는데 손녀의 말이, 이백이 일찍이 고숙(姑孰)에 있는 사가청산(謝家靑山)을 사랑하였으므로 처음엔 어떤 산기슭에 장사하였다가, 이내 청산으로 천장(遷葬)하였다고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내가 어전으로 나아가니 주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제 경(卿)의 말을 듣고 지난 성현(聖賢)의 일도 잘못 전해진 것이 있음을 확연히 알았는데, 오늘 또 역대의 와전된 일을 논변(論辨)하는 것을 듣고, 과인은 처음으로 그 진상을 알게 되었다’ 하셨다.”
유희춘이 경연석상에서 선조(宣祖)에게 이백이 채석강에 빠져 죽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잘못 전해진 역사를 상고하여 진실을 밝히는 유희춘에게 선조가 감탄한 내용이다.
요새 MBC에서 ‘제5공화국’을 방영하고 있다. 그런데 전두환 역을 맡은 모 연기자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두환을 미화시키는 것이 아니냐 하여 네티즌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제5공화국’을 방영하는 것도 다소 시기상조일 뿐만 아니라, 미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총칼로 정권을 찬탈한 자에게 미화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역사의 준엄한 심판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현혹되지 말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설 의무가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이 새삼 필요한 때임을 잊지 말자.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