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적(五賊)’ 그들만의 리그
한남동과 서빙고동 주변의 대저택은 특권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표상물
서울이라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 북녘은 닭똥구멍 민둥 /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족 /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김지하, 「오적」, 「사상계」(1970. 5), 강조점은 인용자 주)

「오적」은 「사상계」에 먼저 발표된 뒤, 야당이었던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 전선」에 다시 게재되어 대중들에게 박정희 정권의 부도덕성을 폭로했다. 당시 오적촌으로 불려지는 용산구 동빙고동에는 다섯 명의 도적이 살고 있었다. 이른바 오적(五賊)이라 일컬어지는 도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소위 한국 사회에서 힘깨나 쓰며 특권층으로 인정받는 이들을 망라한 이들의 행각은 파렴치 그 자체이다.
‘잘 살아 보세’의 허구성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오적촌은 문제가 되는 동빙고, 서빙고 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로구 평창동과 구기동이 정부종합청사의 건설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팔려 나가면서 경관이 수려한 동네는 특권층의 전유물이 된다. 오적촌이라 불려지는 동빙고동에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특히 1970년 3월 정인숙이라는 여인이 권력층과의 밀착 의혹 속에 피살되고, 그해 4월에는 서울 마포구 창전동 산2에 위치한 와우지구 시민아파트의 한개 동이 맥없이 붕괴했다. 물론 모두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관련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69년의 ‘3선 개헌’으로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놓은 박정희 정권을 지탱하는 정재계의 권력층들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 넘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이들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끼리 동일한 거주 의식으로 묶여질 수 있는 곳을 자신들의 거주지로 선택했다. 이런 과정에서 서울에는 특권층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출현한다. 「오적」에서 언급한 지역 중에는 오늘날 퇴락한 느낌을 주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의 특권층과 연상되는 낯설지 않은 지역들이 있다.
남산 3호 터널, 이태원 지하차도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동빙고 동은 한강을 굽어보는 수려한 경관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한남동, 서쪽으로는 서빙고동이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한국의 재벌들과 정치, 연예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 지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개발된 지역이다. 이전까지 서울의 외곽지대로 과수원이나 서울로 몰려 든 빈민들이 판잣집을 이루며 살았던 동네들은 서울의 근대화와 함께 강제로 철거되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만큼 우뚝한 집들이 들어선다. 서울의 주택난 해소와는 상관없는 이들 주택들은 특권층들의 권력을 상징하는 표상물이다.
그러나 개발 대상 중에는 특권층의 살만 찌우고, 고스란히 서민들의 피해로 돌아오는 지역도 있었다. 소위 시민아파트로 명목 하에 개발되었던 공공주택은 땅 투기와 아파트 딱지(분양권)를 사들일 수 있는 자들의 주머니를 불렸다. 이곳이야말로 「오적」에서 급살을 맞고 죽은 다섯 도둑놈들의 배를 두둑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총체적인 부정부패 과정에서 날림과 부실로 건설된 주택에 입주하는 이들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은 지 1년도 안된 5층짜리 건물이 주저앉아 수많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발생시킨 ‘와우 아파트 사건’은 떡고물뿐만 아니라 떡 덩어리를 챙긴 ‘오적’들과 이에 동승한 복부인과 같은 투기꾼들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서울 시민의 부족한 주택을 해결함과 동시에 현대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는 명분 아래 건설된 공공아파트들의 최대 수혜자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도시 서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오적」의 ‘포도대장’과 같은 사정기관과 수사기관은 권력의 시녀 역할밖에 할 수 없다. 아니 자청하여 권력을 지킨다. 1970년대 파출소 간판에 붙어 있던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중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지팡이가 보행의 보조적 수단이 되면 좋겠지만, 지팡이가 권력의 도구가 된다면 방망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 사정, 수사 기관은 힘 센 도둑놈들에게는 편리한 지팡이가 되었지만, 입에 풀칠이라도 해서 먹고 살기 위하여 상경한 ‘꾀수’와 같은 ‘이농인’들에게는 몽둥이가 되었다. 매일 서울역과 청량리 역을 통해 올라오는 상경인구들은 ‘하꼬방’으로 불려지는 쪽방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특권층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우범자가 된다. 「오적」의 ‘꾀수’가 무고죄로 ‘가막소(감옥)’으로 가는 것처럼…….
1970년대 도시 미관을 위해 구걸하는 거지들이 사라지고, 불량주택으로 불려지던 무허가 판잣집들이 철거되고 난 자리에는 삼일빌딩과 청계고가도로로 상징되는 현대적인 상징들이 들어섰다. 한국의 발전을 상징하며 산뜻하게 단장된 외장은 ‘오적’들만의 리그를 위한 경연장이었던 것이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