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먹고 살기가 힘든 세상이다. 하기야 가난한 서민들은 어느 때건 항상 먹고 살기가 힘든 법이지만, 특히 IMF 이후부터 먹고 사는데 힘이 더 드는 것 같다. 정부에서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으나, 호전될 전망이 별로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언제 나아지려는지…. 게다가 민생의 폐단이 문제이다. 정부에서도 민생의 폐단을 바로 잡으려고 하고 있지만, 워낙 뿌리가 깊어 단시일 내에 일소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도 예전보다 나은 것만은 사실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시정과 개선을 통해 뿌리 뽑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 ‘가난한 놈 소인 된다’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은 나라의 힘으로도 힘들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굽힐 일이 많기 때문에 소인처럼 되기 쉽다. 이처럼 빈곤은 때론 인간의 선한 본성을 해치기도 하는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아마 심지(心志)가 굳고 수양(修養)이 깊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사람들은 이러할 것이다. 이들을 탓하기 전에 이 지경으로 만든 위정자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창한 맹자(孟子)가 제일 중시한 것이 백성이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런데 국민과 국가가 가난하고 어렵고 어지러울 때에는 민생의 폐단이 극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폐단을 제거하지 못하면 공멸하게 되는 것이다. 『미암일기』에 민생의 폐단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내가 나아가 다음과 같이 계(啓)하였다. ‘재변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어 비록 하급 관원일지라도 오히려 모두 우려를 하옵거늘 하물며 대신이나 시종신(侍從臣)은 어떠하겠습니까?… 방금 민생의 폐단에 대해서는 조정의 신하들이 이미 다 계하였거니와, 수군(水軍)은 첨사(僉使)나 만호(萬戶)에게 지독한 수탈을 당해 견뎌내지 못하고 도망쳐 흩어지는 현실이며, 각 고을 수령들이 한 문중(門中)이나 그 이웃으로서 전장(田庄)을 지니고 농사하는 자들에게 연대 책임을 지워 토색질을 하는 까닭에 마침내 한 마을이 빈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신(臣)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첨사·만호를 특히 중·하등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그 중에 청렴하고 공평하여 군졸을 잘 무마하는 자는 각별히 상을 주어 칭찬하고 수령에 대해서도 또한 그렇게 하오면, 징계도 있고 권장도 있게 되어 군졸과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혜택이 있을 것입니다. 또 황해·평안·경기 세 도는 중국 사신이 연달아 왕래하는 바람에 백성들이 견뎌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전세(田稅)는 이미 면제를 해주었지만, 외방 백성들의 고난을 겪는 공납(貢納)에 있어서도 감사(監司)에게 물어서 면세해 주면, 백성들이 또한 만에 하나라도 혜택을 받을 것이옵니다. 이것은 우신(愚臣)의 보잘 것 없는 관견(管見)이옵니다.’ 자전(慈殿)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신(君臣) 상하가 서로 힘써 시행하도록 하라’셨다.… 김수(金 )가 아뢰기를 ‘지난번에 평민을 군적에 올리는 일로 말미암아 도피자가 많이 생겼사옵고, 또 부역과 세금의 징수가 너무도 번잡해서 백성이 편안히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므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였다. 내가 아뢰기를 ‘예로부터 평민을 군적에 올리고 난 뒤에는 으레 도적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 없사옵니다. 또한 부정하여 좀도둑질하기를 좋아하는 자도 있사오니 만약 백성을 무마하고자 하면 마땅히 수령을 잘 선택하고 아울러 감사를 잘 가려 써야만 되옵니다’ 하였다.”

유희춘이 수군 첨사나 만호의 수탈, 목민관의 토색질, 공납제도의 문제점, 군적(軍籍) 및 부역(賦役)과 세금징수의 폐단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이다. 이러한 폐단은 당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희춘은 청렴·공정하고 능력있는 첨사와 만호, 목민관을 선정하여 이를 살피게 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유희춘은 정책시행에 있어 먼저 백성들을 생각하는 입장이었고, 또 이를 잘 시행하기 위해서는 관리들(특히 목민관)의 자질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개선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폐단을 일소하지는 못하였다.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같은 폐단을 없애고자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개는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가야할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변함없는 의지, 그리고 정부와 국민간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면 누구나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통령 혼자만으로는 모든 일을 처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장관이나 수석비서관 등 측근 참모들이 사심 없이 이를 잘 보좌해 주어야 하고, 특히 정부와 정치권, 국민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해 정책을 시행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역대 정권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폐단을 일소하고 개혁과 개선이 필요한 시점에 있음을 잊지 말자.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