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風紀)가 갈수록 문란(紊亂)해지고 있다. 서양의 나쁜 풍습(風習)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인지, 도덕불감증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무튼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소비자보호원과 함께 서울지역 50개 비디오방 영업 실채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이용객의 90%가 남녀 쌍쌍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디오방 내부에서 포옹·키스·애무·성행위 장면 등이 발견되는 등 풍기문란 행위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경찰청이 최근 발간한 경찰백서에 따르면 청소년 풍기문란 행위가 매년 50%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음주·남녀 혼숙 등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도 나름대로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등 노력은 하고 있지만, 쉽게 감소될 것 같지는 않다. 이 뿐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찜질방이 풍기문란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찜질방에 남녀가 함께 있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제도를 이용자들의 잘못된 이용 태도로 망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어디 그 뿐인가? 노래방에서도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여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하여 문란한 짓을 한다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전화가 여성을 몰래 촬영하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보도에 따라 카메라폰의 시판을 금지했다고 아랍뉴스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어쨌든 우리의 경우 풍기문란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유교윤리를 신봉했던 조선시대에도 풍기문란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모양이다.

『미암일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어제 들으니 장성(長城)의 변간중(邊幹仲)이 남의 여자 노비를 취하여 첩을 삼고, 그 주인과 맞서 대항을 하고 성주(城主)에게 함부로 거역을 하여 잡혀서 옥중에 단단히 갇혔다고 한다.… 전라감사(全羅監司)가 계(啓)를 올렸는데, ‘보성군(寶城郡)에 정배(定配)된 죄인 신의 (申 )가 둘러막아둔 가시 울타리를 뚫고 멋대로 출입을 하며 조정 관리의 첩을 강간하였다며 극히 놀라운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상께서 ‘신의를 잡아다가 문초하라’고 명하셨다. 송군직(宋君直)의 노비가 일이 있어 올라왔는데 말하기를, ‘변수정공(邊守楨公)이 일찍이 남의 여종과 사통하여 관군(官軍)이 잡아가려 하자, 칼을 뽑아 찌르려고 하면서 성주(城主)를 욕하고 꾸짖음으로써 저들이 크게 화를 내어 보고하자, 잡아 가두라하여 혹독하게 형틀에 묶어서 가두었다 하고 변간(邊澗)도 잡으라 하므로 도피하여 담양으로 갔다고 합니다’ 하였다.… ‘풍속을 바로잡는 일에 있어 먼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사옵니다. 강상(綱常)을 범한 대악(大惡)은 국법으로 반드시 베어 죽이는 죄지만, 그러나 그 악이 일어나는 것은 수령(守令)으로서도 예방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근래 도리에 어긋난 극악한 변고(變故)가 발견되면 교화를 잘못했다 하여 잘못을 수령에게 돌리므로 수령은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그 사실을 오로지 덮어두려고만 합니다.… 원컨대 대신에게 의논하시어 교서를 내려 중외(中外)에 명시(明示)하여 교화를 잘못했다는 수령에게는 죄책을 묻지 말고, 숨기고서 알리지 않은 수령은 발각되는 대로 파직시키면 공정하고 청명(淸明)한 정치가 거의 달성될 것입니다’ 하였다. 좌상(左相) 권철(權轍)이 선뜻 나아가 아뢰기를, ‘유희춘의 말이 옳습니다. 지금부터 6, 7년 전 심통원(沈通源)이 정승이 되었을 때에 강릉(江陵)에서 인륜(人倫)의 변이 있어 당시의 부사(府使)를 파직시켰습니다. 이런 일이 두세 번 있었으나, 근일에 와서는 다시 이와 같은 조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외방 수령들이 조정에서 자기들을 논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와 같이 죄를 엄폐하려는 구차스러운 버릇이 있습니다’ 하였다.”

양반이 남의 여비(女婢)를 첩으로 삼고 그 주인과 목민관에게 대들다 옥에 갇힌 사건, 유배중인 죄인이 조정 관리의 첩을 강간한 사건, 남의 여종과 사통한 양반이 자신을 잡으러 온 관군에게 칼을 휘두르고 목민관을 욕하다 옥에 갇힌 사건 등 풍속을 어지럽힌 사건이 발생하면 그 과실을 교화를 잘못한 목민관에게 돌리므로 목민관이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보고하지 않고 덮어드는 바, 풍속교화를 위해 보고한 목민관에게는 죄를 묻지 말고 보고안한 목민관을 파직시키라는 등의 내용을 유희춘이 기록하였다. 당시 풍기가 문란하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정에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제가 심각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풍기문란은 항상 골칫거리이다.
‘좌전(左傳)’에 보면 ‘나라가 장차 망할 때에는 먼저 근본이 반드시 무너지고 이후 지엽적인 모든 것이 넘어진다’고 한 구절이 있다.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따라서 무너지게 되는 법이다. 풍기가 문란하면 나라의 기강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