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Made in USA’의 위력
미국인 아내를 둔 주인공 조덕배는 그 후광으로 승승장구 한다
제목 자체가 희한한 김주영의 <아내를 빌려드립니다>(창작과 비평, 1975 가을)는 1970년대 한국 사회 특히 수도서울의 정신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이다. 근대화라는 에너지를 연료로 하여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는 폭주기관차와 같던 당시 한국사회의 목적지는 아메리카였다. 대한민국 건국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미국 이미지와 정치경제 면에서의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그리고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제품은 한국사회를 저절로 친미사대주의의 길로 내몰았고, 저질 GI 문화가 서울 거리에 흘러넘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세태를 포착하여 김주영은 조덕배라는 문제적 인물을 창조해 냈다.
조덕배는 스물여덟살의 젊은 나이지만 서울에서 손꼽히는 무역회사 기흥산업주식회사 관리상무였다. 그가 “경상북도 영양면 수비면 산골 소출 안나는 땅거죽만 직사하게 긁다가 쓰러지고 말 그런 집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의 출세는 엄청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출세의 배경에는 미국인 아내 엘리자베드가 있었다. 원래 조덕배는 대구 미군부대 안의 <릴리세탁소>에서 다림질을 하던 고단한 젊은이였다. 그곳에서 늙다리 흑인 상사 죠지 팍을 만나 그의 호감을 얻고 양자가 되어 죠지팍의 고향인 뉴욕주 나이아가라폴즈로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덕배의 미국 생활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질구질하고 배고픈 생활이었다. 이웃집 트럭운전사인 죤의 딸 엘리자베드와 전격적으로 결혼을 하였지만 동양인으로 미국에서 자립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조덕배는 엘리자베드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의 수중에는 단돈 15만원뿐이었다.

하지만 덕배는 공항 세관원들의 친절한 반응을 통하여 한국생활이 전도양양하리라는 암시를 받는다. 택시 안에서 키스하고 있는 덕배 부부를 유교적인 눈초리로 훔쳐보고 있는 운전사조차 공항의 세관원들처럼 질투가 섞인 선망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점차 덕배는 아내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한국사회에서 커다란 뒷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엘리자베드 덕분에 미국인 과부가 운영하는 태평로 영어회화 학원 강사를 시작하는데 아내와 함께 공동으로 진행 하는 강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해외유학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소싯적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 아내를 낚아채서 다시 본국에 돌아온 덕배의 이야기는 큰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엽전 주제에 어떻게 젊은 미국인 아내를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수강생들의 시각에서 당시 한국 사회에 팽배한 친미사대주의를 읽을 수가 있다. 그들 부부는 수강생 수가 배로 늘어났고 주간지 기자가 찾아오고 텔레비전 같은 곳에서 잠깐씩 얼굴을 비치는 스타강사가 되었다. 그들 부부는 이 땅의 문화와 사회 전반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서울시장 감사장 까지 수상한다.

이러한 덕배 부부에게 기막힌 제의까지 들어온다. 기흥산업주식회사 사장 도상태가 한달에 대 여섯 번 있게 되는 파티에 참석할 때만 엘리자베드를 파트너로 빌려준다면 관리상무 대우로 월 이십만원의 봉급과 회사의 승용차 한 대를 고정배치 하겠다고 제안을 한 것이다. 이러한 제안의 배후에는 엘리자베드에게 애욕을 품고 있던 도사장의 비서실장 최가가 있었다. 윤리적인 고뇌보다는 현실적인 실리를 선택한 덕배는 도사장에게 한달에 서너번씩 아내를 빌려주게 되고 엘리자베드는 파티에서 안 주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제 아무리 미국 땅에서 태어난 여자라 할지라도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가는 본데없는 트럭운전사 죤의 딸임이 틀림”없는 엘리자베드가 한국 상류사회 파티에 화려한 꽃으로 변신하는 장면에서 이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실히 들어난다. “주근깨 투성이의 엘리자베드가 키작고 배불뚝인 도상태의 팔짱을 끼고 파티 장소에 나타나면 홀은 금방 물을 끼얹은 듯이 긴장해졌다. 홀에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은 저 암거위같은 도상태가 적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외국 여인의 에스코트를 받고 있다는 자체 하나에 오직 놀라고 다시 놀라 뿐이었다.” 단지 젊은 미국 여인이라는 것이 최상의 선이 되고 미가 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 덕분에 도상태의 회사는 신인도가 높아지고 거래실적이 높아지게 된다.
비서실장 최가의 음모에 의해서 엘리자베드가 납치되는 것으로 소설이 결말처리 되는데, 엘리자베드가 없는 덕배는 또 다시 뿌리 없이 부유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덕배에게 엘리자베드는 실로 거대한 뿌리였고 마법사의 마술봉과 같이 신성한 존재였다. 이 소설은 70년대 한국 사회와 수도 서울에서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라는 표상이 가지고 있는 위력을 살필 수 있는 좋은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