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과 조연의 경계에서 조연을 외치다
최신 뉴스에서 조연만이 만들어가는 드라마 라는 타이틀을 본적이 있다. 시청자들은 누구나 조연들을 의심한다. 누구일까 연기는 잘할까? 하는 그럼 의심을 눈초리로 조연을 바라보게된다.

18세기 시민극이 등장하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한 삼일치의 법칙은 청통같이 지켜졌다. 삼일치의 법칙은 흔히 시간, 장소, 행위의 통일이라 알려져 있다. 즉 사건은 24시간 내에 일어나야 하고, 동일한 장소여야 하며, 행위 또한 일관된 하나의 목적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것은 행위의 통일이지 장소와 시간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고 한다. 어쨌든 이 법칙은 프랑스 고전주의 연극의 3대 작가인 코르네유, 라신, 몰리에르에 의해 철통같이 지켜졌다. 삼일치의 법칙이 통용되던 시절엔 더욱 주연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하나의 목적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은 분명 극의 흐름을 주인공이 이끌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연은 어느 정도의 등장 장면이나 대사가 있지만, 극의 전개에서 주도권을 쥘 만한 정도까지는 못 된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희곡이나 각본에서 어떤 인물이 조연인가를 판별하기는 어렵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예로 들면, 《햄릿》에서는 덴마크왕자 햄릿이 주역이고, 덴마크궁정의 병사들이 단역임은 자명하지만, 덴마크왕 클로디어스의 역은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햄릿의 복수 행위의 대상이며 주역과 대립하는 원수역이므로, 연극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분명히 주역에 미치지 못하지만, 조연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이렇듯 주연과 조연의 경계의 모호성은 극이란 것 자체가 상호관계로 이뤄지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연과 조연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은 주체 혹은 중심이 되는 주인공의 관점에서 구분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오필리아는 중요도에 있어서는 클로디어스보다 뒤떨어지나, 햄릿의 사랑의 대상이며, 주역의 상대역이므로, 조연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와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는 분명히 조연이다. 전자는 우연히 살해되지만, 햄릿과 클로디어스의 대립과는 처음부터 아무 관계도 없는 인물이다. 후자는 연극의 중심적인 사건과는 관계가 없고, 극이 끝날 때까지 직접 운명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는다. 호레이쇼와 같은 심복역(心腹役)은, 부육(傅育)을 맡는 시녀나 시종과 같은 인물로서 프랑스 고전비극에 곧잘 등장하는데, 이것은 조연의 한 전형(典型)이다.
또 비극 속에 희극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관객의 긴장을 풀어 주거나, 반대로 중심적 상황의 비극성을 돋보이게 하는 ‘코미디 릴리프’의 역할을 하는 인물도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 장면은 적지만 《햄릿》의 묘굴인(墓掘人)과 《맥베스》와 등장 장면이 많은 《리어왕》의 익살꾼도 조연의 기능을 맡고 있다. 이와는 달리 극중의 인물이 아니라 그 역을 연기하는 배우 쪽에서 조연을 가려내는 방법이 있다. 즉 각종 연극 ·영화상 등의 선고(選考)에 있어, 조연상(助演賞)의 대상이 되는 배우가 맡은 역이 바로 조연이라 생각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연극을 대상으로 하는 토니상에 조연남우상 ·조연여우상 부문이 있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수많은 조연의 탄생은 주연의 탄생만큼 빛을 바라지 못한다. 하지만 때론 살인의 추억의 반장님으로 지구침략자 강만식으로 기억의 뇌리 속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겠지만 조연은 주연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바라봐서 좋지만 부담스러운 스타가 아닌 인간적이고 나의 모습 같기 도한 조연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스타 탄생은 수백 혹은 그 이상의 조연 탄생을 의미한다. 이름이 쟁쟁한 스타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닌 속이 꽉 찬 조연들이 스타가 되는 때가 되면 좋겠다.
김명범<대중문화 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5학기>
김명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