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방송국 TV 뉴스에 일부 대학 교수들이 돈을 받고 석·박사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보도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런데 한심스런 일은 한 대학 관계자가 인터뷰에서,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 위헌 판결시 관습법이 적용된 것을 예로 들면서 받은 돈을 개인용도로 쓴 것이 아니라, 대학 운영비나 연구비로 쓰는 것이 관례였다는 옹색한 변명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인간이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니 수치스럽기 짝이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석·박사학위논문을 대신 써주는 가격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한다고 하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데 있다. 그래서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함께 적발된 해당 대학과 교수 등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금년 5월 전교학신문에 ‘해외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소지자를 조사해보았더니, 30%정도가 가짜박사였다’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러한 가짜박사들이 판을 치자 이들을 사회에서 뿌리뽑겠다고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발벗고 나섰다 한다. 교육인적자원부의 박사관리능력만 바라볼 수 없다는 눈치인 듯 하다. 학력병이 창궐하다 보니 석·박사학위의 의미가 점점 변질되어 가는 것 같다.

학문은 왜 하는가? 입신양명하기 위해서인가? 인격수양을 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책 속에서 진주를 찾기 위해서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학문은 끝이 없다’고 하였고, 주자(朱子)는 우성(偶成)이란 시에서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고 한 바 있다. 이들 뿐 아니라 우리 선인(先人)들도 학문에 대한 명언(名言)을 많이 남겼다. 이 중 몇 사람만 소개하면, 서경덕(徐敬德)은 ‘자기만의 공부법을 터득하라’고 하였고, 이황(李滉)은 ‘공부란 몸에 배어야 마음 속에 간직된다’고 하였으며, 이이(李珥)는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라고 하였고, 이식(李植)은 ‘공부하는 데에는 순서가 있다’고 하였으며, 이현일(李玄逸)은 ‘깊이 탐구하는 것이 공부의 근원’이라 하였고, 정약용(丁若鏞)은 ‘공부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최한기(崔漢綺)는 ‘20대에는 무엇이든지 탐색하고, 30대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며, 40대는 세계에서 얻은 바를 자아화하고 다시 세계화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50대 이후에는 새롭게 개척하지 말고 이미 이룬 바를 간추려야 한다’고 하였다. 모두 체득(體得)해서 한 말이니 가슴에 새겨두기 바란다.
어쨌든 학문을 하는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에 전념해야만 한다. 『미암일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주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제 경(卿)의 말을 듣고 지난 성현의 일도 잘못 전해진 것이 있음을 확연히 알았는데, 오늘 또 역대의 와전된 일을 논변(論辨)하는 것을 듣고, 과인은 처음으로 그 진상을 알게 되었다. 경의 학문은 어찌 이다지도 대단한가? 이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하셨다.… 주상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이와 같이 기쁜 일이 있단 말이냐? 경은 잘 외고 잘 강론하여 대지르는 곳마다 환한 것은 내가 진강(進講)하는 석상에서 익히 보았다’ 하시었다.…주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일에 이미 경으로부터 말을 들었다. 만약 과연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찌 크게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경의 학문은 어찌 이와 같이 서적마다 다 정밀하고 해박한가! 인력으로 도달할 바가 아니니 깊이 탄복할 만하다’ 하시므로, 내가 주대하기를 ‘신이 귀양살이하는 동안 대강을 읽어 보았습니다’ 하자, 주상 전하께서 ‘경은 능히 곤궁과 영달에 마음이 움직이거나 뜻이 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학문에 힘을 쓴 것이 이와 같이 정심(情深)하다’ 하셨다.”

선조(宣祖)가 유희춘의 학문이 정밀하고 해박해 대단하다고 감탄한 내용이다. 유희춘은 선조 때의 대표적인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황·조식·기대승·이이 등과 함께 당시의 학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학자로서 독실하고 진지하였으며 열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겸손하였다. 이와 함께 그의 학문적 깊이와 폭, 그리고 지적 욕구 또한 당시의 학자들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그는 학자로서의 자세와 학문의 목적, 그리고 교육목표가 분명하였다. 특히 그의 학문하는 자세는 타학자의 모범이 되었다.
『논어(論語)』에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는 구절이 있다. 금년 5월 국어국문학회 전국학술대회에서 조동일(趙東一) 교수가 ‘공부는 넓게 하고, 연구는 좁게 시작하라. 범속한 논문이 많으면 너절한 사람이 된다. 오직 질이 소중하다고 다짐하라’고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은 대부분 20대일 것이다. 20대는 긴 안목으로 뭐든지 폭넓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며칠 있으면 기말고사가 시작된다. 우리 선인들이 하신 말씀을 명심하고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잘 정리해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란다.
미켈란젤로가 ‘내가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또 일했는지 사람들이 안다면 아마 내가 하나도 위대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 것이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