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지상의 방 한칸’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소설가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온갖 소음을 이길 때나 가능하다
서울에서 소설가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창작 환경을 저해하는 온갖 소음을 이길 때 가능한 것인가 보다.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구하는 작업의 특성 상 소음은 애써 떠올린 발상의 문장화를 방해하는 훼방꾼이다. 숨죽이고 있다가도 불쑥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소음이라는 불청객의 난입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적지 않게 경험했을 것이다.
소설가 박영한도 창작을 방행하는 소음을 피해 서울 언저리를 어지간하게 떠돈다. 그는 신인작가 시절의 글쓰기 공간을 찾는 노정을 『지상의 방 한 칸』을 통하여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신혼 초기 미국으로부터 원조로 들어온 판자를 갖고 날림으로 만든 노량진의 국민주택 2층에 전세 들어 살던 작가 부부는 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글을 쓸 수 있는 방을 찾아 적지 않은 기간을 헤맨다.
인천의 13평짜리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 때는 그래도 평안했다. 그것은 전업 작가로 나선 뒤에 데뷔작인 중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이 소설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 본다면 데뷔작인 <머나 먼 쏭바강>을 노량진의 국민주택의 악조건을 극복하고 개작하고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것이다. 차기작을 구상하고 막상 다음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 ‘나’의 말대로 ‘행운의 공간’이었던 그곳에서의 태평성대는 끝장난다. 한국의 어느 아파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층간 소음은 ‘나’의 심사를 불편하게 했고,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집필 장소를 찾아다니는 방랑을 시작한다.

게다가 첫 번째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나’의 아내는 단순한 계산으로 집의 매매 계약을 체결한다. 기존의 전세금과 출판사에서 들어올 제2장편의 인세를 합치면 한국서민들의 꿈인 ‘내 집 마련’이 이뤄진다는 신념의 과대망상은 현실적인 계산을 배제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1970대 일반적으로 돈을 모으는 방편은 부동산의 구입을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이었다. 그러나 꿈은 단순한 산술로 구현되는 것이 아님을 이 부부는 자신들이 최종적인 잔금을 치루고 나서야 인식할 수 있었다. 기존 전세입주자의 전세금이 3분지 1, 주택을 매입하기 위하여 정부로부터 대출받는 주택부금이 3분지 1인지라 막상 최종적인 잔금을 치렀으면서도 그 집에는 입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전세금을 털고, 대출을 받고 해서 마련한 집은 다른 전세입주자에게 내주고 ‘나’는 부산으로 제3장편의 취재를 위하여 떠났다가 아예 그곳의 묘목 농장에다 집필실 겸 주거 공간을 마련한다. 79년의 10·26사태와 12·12쿠데타를 거치면서 이어진 유신체제의 연장 속에서 ‘나’도 은둔의 세월을 보내기 위하여 혹은 자신의 신상을 지키기 위하여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흉폭한 과정을 거치고 난 이후 변화한 문학시장에 둔감했던 ‘나’의 3번째 장편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지나치리만큼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에 집착한다. ‘나’는 부산 두구동에서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근교의 W(현재의 남양주시로 추정되는 곳)읍으로 이주한다. W읍으로의 이주는 단순히 서울 근처로 돌아왔다는 것만이 아닌 ‘나’의 문학 방향의 바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호구지책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생존의 절대적 조건이 있다. W읍으로 이주한 이후에도 ‘나’는 같은 동네에서 세 번이나 이사를 한다. 자주 이사를 다니는 통에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나’가 개량한 편의시설에 대한 권리는 당연히 포기해야 했다. 이주의 이유는 대개의 경우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살다 보니 아이들의 목소리, 다른 가구들과의 갈등 등 여러 요소가 있었다.

1970년대 정부의 서울 인구유입 억제 정책은 서울 근교의 소도시까지도 주택난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즉 한 가구 단위로 이주 시, 직장이 지방에 있음에도 서울로 전입하는 인구의 전입신고나 예비군, 민방위대 편입 등에 제한을 두는 조치의 결과로 서울 근교의 도시는 풍선처럼 부풀려지고 있었다. 주민등록상의 이주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이러한 조치들로 인하여 서울 근교의 소읍들은 도시적 규모의 인구가 살면서도 기반 시설은 전무했으며, 심지어는 축사로 쓰던 곳까지 방으로 고쳐 세를 놓을 정도로 주거 수준은 열악했다.
게다가 5공화국은 서울로의 인구 유입을 제한하고 있던 정책을 포기하면서 서울과 인근 소도시, 소읍들로 인구는 더 많이 유입되면서 방을 구한다는 것은 몇 달을 헤매도 구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월세든지 전세든지 간에 껑충 뛰어 버린 세를 감당해낼 수 없던 이들은 만기일 몇 달 전부터 방을 구하러 다니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나’는 만기일 때문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방을 찾아 서울 근교를 샅샅이 훑고 다니지만 실패한다. ‘나’야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의 확보가 목적이지만, 다른 이들은 ‘나’보다 절박한 상태이기에 마음에 들어 계약했던 집마저 포기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내의 유산으로 아이를 잃고 출판사의 독촉을 받으면서 쓰고 있던 소설도 완성하지 못한다. 서울과 인근 도시에 수많은 방들이 있음에도 ‘나’를 위한 ‘지상의 방 한 칸’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아픔을 겪은 후에 ‘나’는 김포 쪽에 어렵게 집을 구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가구공장이 들어온다는 소문에 ‘나’는 긴장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감내한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사는 한 소음이 없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공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멘트로 만든 옥상 위에 지붕을 얹으면서 생긴 조그마한 공간이었다. ‘나’는 현실의 소음을 인정하고, 그 소음을 떠날 수 있는 곳인 방 한 칸을 찾으면서 사람들 속에서 글을 쓰게 된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1970년대 서울의 도심은 자동차 경적소리로 소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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