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가는 전통 목조각의 세계
“우리는 지금 죽은 나무를 다시 살리는 일을 하는게다”
나무(木)는 감히 우리 문화와 생활의 시작이고 끝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먼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나무 신단수(神壇樹)를 비롯해 오행(五行; 木,火,土,金,水)에서 5성(星)의 목성, 5시(時)의 봄, 5방(方)의 동(東), 5색(色)의 청(靑), 5성(聲)의 각(角), 5상(常)의 인(仁), 5수(數)의 8, 5미(味)의 산(酸), 5제(帝)의 청제(靑帝), 5정(情)의 희(喜), 5장(臟)의 간(肝)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목(木)은 봄기운같이 위로 자라면서 지향하는 생명의 작용이나 근원으로 만물의 시작인 셈이다.
이러한 나무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 목조각 분야의 대(代)는 겨우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모든 목공예품의 기본이 되는 목조각 조차 기계에 깎이고 틀에 찍혀 나오는 세상이다. 나무를 고르고, 베고, 손질하고, 깎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칼끝을 밀어 넣는 순간마다 숨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로봇 팔에 매달린 칼이 꼭 맞는 규격으로 하루에 수백, 수천 개씩의 나무를 조각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목조각품이 쏟아져 나오는 이런 세상에서 목아(木芽) 박찬수(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의 장인 정신이 새삼 오롯하게 느껴진다.
목공예의 시작은 땅의 기운을 끌어올리고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바르게 자란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수많은 종류의 나무 가운데서 쓰임에 맞는 하나를 선택하고, 그 목재의 성질을 세밀히 살피는 일이 시작이다. 그렇게 고른 나무의 외피를 벗기고 결 고운 속살만을 남긴다. 알맞게 건조시킨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형상이 밖으로 떠오른다. 그것을 따라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따라 날을 바짝 벼린 끌로 재단한다. 나무의 속을 비워 중량도 덜고 갈라짐도 방지한다. 가능한 얇게 형성시킬수록 나무의 갈라짐이 적고 목재로서의 수명도 길어지게 된다. 나누어져 있던 조각들을 아교와 어교를 일 대 일로 섞어 접착한 후 세부 조각을 시작한다.
이제 온 정신을 모아 손끝에 집중시켜야 하는 순간이다. 날 선 조각칼은 아주 조금의 힘 차이로 그야말로 작품을 탄생시키게도, 버리는 물건을 만들게도 한다. 죽어있는 나무를 되살리는 일이다. 박 조각장은 숨을 멈추고 칼을 밀어 무늬를 새긴다. 특히 불상을 만들 때에는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조각칼을 잡는다. 칼이 움직여 나무가 패이는 곳마다 불심(佛心) 한 조각씩을 아로새긴다.
“얘, 아들아. 아무래도 내일 비가 올 것 같구나. 해 지기 전에 일을 마치자꾸나.”
“예, 아버지. 서둘러야겠는걸요.”
부자(夫子)는 톱을 들고 호흡을 맞춰가며 나무를 재단한다. 시르렁 시르렁 실근 실근. 원 목의 거친 외피가 벗겨지자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은은하고 잔잔한 나무향이 봄바람에 실려와 코끝에 맴돈다. 이렇게 벌목해 온 나무는 2~3년 동안 자연건조 시킨다.
“아들아. 나무의 가장 큰 단점은 ‘갈라짐’이니 조심에 조심을, 만전에 만전을 기하 거라. 우리는 지금 죽은 나무를 다시 살리는 일을 하는 게다.”

매번 나무 앞에 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지만 오늘은 새삼 옷매무새를 한 번 더 다듬게 된다. 나무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한이 없고 가이없다. 그 끝없는 사랑을 아버지는 칼 끝에 싣는다. 그 끝없는 사랑이 밋밋한 평면에서 새로운 3차원의 세계를 끌어내는 것이다.
“살아서 천년을 가는 나무는, 이렇게 조각으로 남게 되면 죽어서도 천년의 세월을 살아간단다. 그래서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나무에 대한 인식과 적절한 쓰임새에 대한 철저하고 완전한 이해가 필요한 법이지. 명심하거라, 아들아.”
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다 커버린 아들 앞에서 연신 당부의 말씀뿐이다. 나무에 대한, 조각에 대한 그 사랑을 알기에 오늘도 아들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목조각에 쓰이는 나무는 다양하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풍나무, 느티나무를 비롯해 쉽게 구하지 못하는 나무까지 다양한 나무를 다양한 제작 방법으로,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한다. 우리 민족이 제일 좋아한다는 소나무. 소나무는 목조 문화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가장 크다. 일찍부터 중요한 건축재로 사용되어 왕실의 궁궐을 짓는다거나 사찰에서 봉안하는 불상에는 질 좋은 적송을 사용하였다. 한편, 전래동화에서 전해지는 ‘도깨비 방망이’는 박달나무다. 박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목재 중 가장 단단한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기록인 단군신화에서 보이는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이밖에도 수십, 수백 종의 나무들의 성질을 올바로 파악해야 올바른 곳에 쓸 수 있으니 이를 아는 것은 몸으로 부딪혀 얻어낸 자료다. 조각용 칼들 또한 다양한다. 크게 자귀와 조각칼로 나뉘며 대패와 톱도 쓰인다. 작업에 쓰이는 평칼이나 삼각칼 등의 조각칼은 대부분 만들어 쓴다. 조각가가 직접 자신의 손에 맞게 만들고 날을 세우는데 그리하여 조각칼은 조각가의 일부인 셈이다. 칼을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이 칼 가는 과정이다. 칼날이 정확히 서 있지 않거나 날에 흠이 있게 되면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그 흔적이 남게 되어 결국 깨끗한 조각을 구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조각에 입문하면서는 한동안 날붙이 연장들의 날을 가는 것부터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의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뿌리부터 잎맥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의 목조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목재의 선택부터 도구의 제작까지도 온전히 조각가의 몫이다.
오래된 사찰에 보관되어 있는 몇 백년 전불상의 전통 조각법은 이제 대가 끊어졌다. 아니, 끊어졌었다. 다행히도 지금은 박 조각장이 각고의 노력 끝에 기어이 되살린 전통 조각법이 벌써 2대나 전승되고 있다.
“아들아.”
“예.”
“조각 직후에는 사포질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목조각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나무의 결을 사포로 문질러 지우면 안 되느니라. 나무의 흠집을 감추고 채색이 잘 되라고 곱게 다듬는 것이겠지만, 시간이 지나 채색이 탈락되면 흉한 백골이 그대로 드러날 진데 사포로 마무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 안타깝기만 하구나.”
“아버지, 바른결이란 무엇입니까.”
“바른결이란 결을 바르게 사용하였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다리 부분을 만들 때 나무의 결이 가로 방향으로 가는 결이라면 이 작품은 오래 보존되기 어렵다. 그러나 세로 방향으로 가는 결을 사용하였다면 몇 배나 강해지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론상으로는 쉬우나 실제 조각을 하다보면 그대로 되기가 어렵다. 재료로서의 가치를 알고 온전히 이해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거란다.”
나무로 만든 공예품은 끝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나무젓가락부터 시작해서 커다란 배, 집에 이르기까지 생활 곳곳에 목공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 요즈음의 목공예품은 공장에서 출고되느라 혼(魂)이 담길 시간이 없다. 혼이 담기지 않은 불상과 장승, 솟대, 탈은 그 의미를 되살리지 못하는, 단지 조각품에 불과할 뿐이다. 백 번의 칼질을 하면 단지 백 번의 칼자국만 남을 뿐인 목조각 공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손길이 남는 만큼의 흔적에 장인 정신이 새겨지는 것이다.
전통 목공예와 현대 목공예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무를 벌목하기 위해 도끼나 톱을 사용한다고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아닐 터. 옛것을 바탕으로 장인의 새로운 기술과 정신을 담아낼 때 진정한 전통의 아름다움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복신(福神). 비자목으로 만들어졌으며 나무 특유의 따뜻한 느낌이 잘 살아났다.▲ 목재를 선택한 후 대패로 외피를 벗겨낸다.

▲ 조각칼은 작업의 내용에 따라 크기나 모양이 다양하다.

▲ 조각과 접착이 끝난 후 나뭇결이 정리되면 채색작업을 한다.
<방유미 기자>  0166500428@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