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 풍요가 탄생시킨 새로운 계급 ‘중산층’
그들은 사회의 말썽이나 사건을 피안(彼岸)의 불이나 딴세상처럼 인식했다
대망의 70년대 개발독재 정권의 약속대로 풍요가 찾아왔다. 하지만 70년대 벽두에 일어난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서 알 수 있듯이 풍요를 누리는 사람과 풍요를 만든 사람이 다르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또한 70년대는 인간 행복의 조건이 과연 물질적인 풍요인가 하는 김현 교수의 반문처럼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가 됨으로써 인간소외 현상이 서서히 사회의 전면에 돌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는 슬로건에 의해서 문화전통의 착종과 타자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문화는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70년대 한국사회는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자세를 갖추기 시작했고 중산층이라고 하는 새로운 계층을 탄생시켰다.
서울은 중산층의 모태이자 활동공간이었다. 최일남의 단편소설 <흔들리는 城>(『세대』1975. 4.)은 서울의 고급아파트를 배경으로, 고부간의 갈등을 통한 문화의 착종을 형상화하고 있는 텍스트다. 화자 주인공이 텍스트의 모두(冒頭)에 “좀 거창하게 말하면 천구백칠십년대의 서울 복판에서 두메산골 노파와, 난다 긴다 하게 사는 서울의 젊은 여자가 만난 것입니다.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라고 전제하고 있듯이 이 소설은 중산층 가정의 내적인 갈등을 그림으로써 당시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제모순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화자의 아내 집안은 피혁공장을 통해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한 집안이다. 하지만 화자는 장인의 성공을 ‘서울에 올라와서 한 이십년 엄벙대고 살다가 오늘의 행운 잡았다’고 폄하한다. 가문이나 집안은 별 볼일 없는 벼락부자일 뿐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화자는 이러한 장인과 처가 덕을 톡톡히 보는 인물이다. “목욕탕에서 나오면 아내가 걸쳐 주는 가운을 입고, 소파에 푹 파묻혀서 식전주로 마티니 한잔을 손에 듭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젊은 여가수가 엉덩이를 흔들며 간드러지게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아, 그 느긋함이라니. 비록 처가덕에 하는 호강이기는 합니다만”이라는 화자의 진술 속에서 화자의 텍스트 내적인 성격과 당시 서울의 중산층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물질적 풍요에 의해서 세상의 살인사건이니 데모니 하는 사건이나 사회의 말썽들에 대해서는 피안(彼岸)의 불이나 인연이 없는 딴 세상일처럼 인식하고, “누가 나의 이런 생활을 깨뜨릴까 봐 은근히 겁도 나고 그러데요”라는 화자의 생각을 통하여 당시 중산층의 내면풍경을 읽을 수 있다.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은 “어느만큼 사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살림살이 그 자체보다도 남을 더 의식해서 사는 수가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웃에 대한 체면, 친척에 대한한 허세, 친구에 대한 과시 같은 것이 무시 못 할 요소로 그 사람의 생활 구조 속에 자리 잡습니다. 그래서 못사는 사람, 생활이 처지는 사람은 애써 외면해버리고 그리고 교제명단에서 털어버리고, 수준이 맞는 사람끼리, 그런 또래끼리 어울려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 갑니다.”라는 진술처럼 이성 중심주의를 전가의 보도로 삼고 있었다. 서울과 시골,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등 이분법적인 차별의식을 가지고 선택과 배제의 원리로 자기들의 사회를 만들어갔다.
서울의 고급아파트에 거주하는 중산층 가정 속으로 두메산골에서 농사를 짓던 어머니가 들어오면서 안락함이 깨지기 시작한다. 재래적인 고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70년대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 놓은 신고부간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신고부간의 갈등에서 승리자는 항상 며느리인 아내였다.
“「어디를 그렇게 쏘댕긴디야? 집에 붙어 있지 않고.」 어머니의 말에, 「재밌게 놀고 왔당게」 「자전거를 타고 말여잉?」 아이들은 즈이 할머니의 말을 흉내내었읍니다. 「그런 말을 하면 못쓴대두」 아내가 아이들을 나무랐습니다. 아내의 말은 아이들이 어른을 놀리는 것을 나무라는 것보다는, 그런 말에 물들 것을 염려해서 하는 뜻이 담긴 것을 나는 압니다. 어머니도 이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쭈뼛쭈뼛 하면서 자기 방 쪽으로 갔습니다”라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아내는 서울말이 아닌 사투리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서울이라는 가치척도를 가지고 삶을 재단하는 여자였다. 아내는 “그만그만한 수준의 사람들이나 친구들과는 더할 수 없이 다정하게 굴다가도 경제적으로 신분상으로 별 볼 일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매몰차게 싹 등을 돌리는”여자였다. 화자는 이러한 아내의 차별적인 시각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화자는 어머니를 통하여 “오랫동안 외면하고 살아왔던 흙냄새 같은 것, 잊고 살던 이 시대의 한 부분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결코 아내에게 반발을 하지 못한다. 화자는 현재 생활이 안온하고 평안하다 보니까 누가 현재의 생활을 빼앗아 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를 통하여 서울 중산층의 생활이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허허한 생활’이라고 인정을 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풍요가 가져다 준 물질주의 문화라는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흔들리는 성>에서 살필 수 있듯이 70년대 한국사회는 경제적 풍요와 중산층 그리고 서울이 삼위일체가 되어 소비적 상업주의 문화로 우리 문화가 변천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