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새끼’가 태어났습니다”의 상징의례
금기, 신성, 벽사 등 금줄은 우리 민족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의례문화

“응애~”
마침내 힘차면서도 날카로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당에 서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시어머니와 아들은 방문 앞으로 달려갑니다.
“아이고, 아가. 참말로 고생했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여보, 고생했어. 어디, 우리 아기 얼굴 좀 보자.”
오늘 창석이네 집에 커다란 경사가 났습니다. 창석이에게 동생이 생긴 것입니다. 아직 발갛고 쪼글쪼글하지만 창석이는 동생이 마냥 신기하고 예쁘기만 합니다. 창석이처럼 병원에서 낳은 것이 아니라 집에서 낳았기 때문에 신기함이 더합니다. 입까지 헤벌레 벌리고 동생을 바라보는 창석이를 보며 할머니께서 한 마디 하십니다.
“인석아, 그렇게 좋으니?”
“할머니, 아기 손가락 좀 보세요. 와, 정말 신기해요.”
그런데 웬일인지 할아버지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나가보려고 일어섰는데 마침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십니다. 어디서 가져오셨는지 짚과 숯, 한지, 솔가지를 들고 오셨습니다.
“영감, 금줄 치려고 챙겨왔수?”
“암, 쳐야하고 말고. 집안에 경사가 생겼는데 그냥 넘어가서야 되겠나. 허허.”
“할아버지, 금줄이 뭐예요?”
“그래, 창석이는 아직 금줄을 한 번도 못 본 게로구나. 하긴, 요즘 어디 아기 낳았다고 금줄 치는 집이 있어야지…….”
할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으시며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지금이야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지만 옛날에는 전부 집에서 아이를 낳았단다. 아기를 낳으면 방문이나 대문에 금줄을 치는데, 이 금줄을 걸어둠으로써 “우리집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하는 뜻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단다.”
“아, 그랬구나. 할아버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허허, 그래. 옛날에는 갓난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죽는 일이 많았는데 그건 나쁜 귀신이 들어와 아기의 목숨을 빼앗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 금줄은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도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꼭 대문 위에 금줄을 걸어두었던 거란다.”
“그럼, 새끼줄 사이에 숯이랑 솔가지는 왜 끼우는 거예요?”
“사내아이를 낳으면 빨간 고추를 끼우는데 고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겠지? 고추의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다고 생각했었고, 숯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걸러준다는 뜻을 갖고 있지. 또, 솔가지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처럼 살아있는 생명을 나타냈고. 한지는 한밤중에도 금줄을 알아볼 수 있게 끼우는 거란다. 금줄이 쳐진 집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거든.”
“금줄은 아기를 낳았을 때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많이 이용했단다.”
미역국을 내오신 할머니께서 한 말씀 거드십니다.
“굿을 할 때나 산제사를 드릴 때도 꼭 금줄을 만들어 입구에 둘렀단다.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던 셈이지. 또, 고추장이나 간장을 담가 둔 장독에도 금줄을 둘러 나쁜 기운이 새어들어가는 것을 막았단다.”

할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작년 가을에 외할머니 댁에서 금줄을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 그런데 왜 지금은 이런 금줄을 치지 않나요?”
“그러게나 말이다. 아기는 병원에서 낳는데다가 설사 집에서 낳는다 하더라도 죄 아파트라 금줄을 걸 만한 곳도 없어진 게지. 세상살이가 점점 각박해져 이웃 간에 왕래도 없고 하니까 집안의 경사를 이웃에게 알릴 마음이 아닌 것 같고. 요새는 죄다 금줄 없이 태어나는 아기들뿐이구나 …….”
요즘의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꼭 한 명 분의 크기의 침대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곳에서 플라스틱 젖병에 담겨 있는 우유를 먹으며 간호사들의 돌봄을 받는다. 신생아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것은 소독약과 유리벽이다. 고추 모양과 복숭아 모양의 스티커에서 간신히 금줄 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는 아기를 낳으면 누구든지 금줄을 걸었다. 이로써 아기 낳은 것을 알리고 아기의 성별도 알렸으며 외부인들의 축복과 금지를 동시에 바랐다. 아기가 보고 싶더라도 삼칠일(21일)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산모는 그 동안 미역국을 먹으면서 몸조리를 했고, 아기는 그 동안 면역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
조금만 나이가 든 세대라면 다 아는 이 같은 금줄 문화는 ‘금줄 없이 태어난 세대’들에게는 보지도 못하고 말로만 듣던, 그저 옛날 문화일 뿐이다.
금줄의 역사와 유래는 현재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고, 유래가 어떠한지는 모르지만 우리 민족의 금줄 문화는 널리, 그리고 깊게 퍼졌다. 아기를 낳았을 때는 물론이고 굿이나 제사를 지낼 때, 심지어는 장을 담근 장독에도 금줄을 쳤다.
금줄의 상징이,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깊숙이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것일까. 금줄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글자 그대로 ‘금지(禁止)’의 뜻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집에 늘어뜨린 금줄은 바깥사람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마을굿이나 당산제를 위해 동네 입구나 제관의 집, 당집에 쳐두었던 금줄도 잡귀와 악귀의 침입을 막는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렇게 친 금줄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걷어낸다.
두 번째 시각은 금줄을 ‘금(禁)’이 아니라 ‘검’으로 보는 견해다. 국학자 이능화는 검(혹은, 감)은 한, 감, 선과 같은 고대어와 같은 뜻인 신성어라고 추정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장승, 탑, 당수나무 등에 감아둔 금줄이다. 여기에 걸어둔 금줄은 썩어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두는데, 이는 감아둔 대상에 신성성을 부여하는 것이라 하겠다. 두 번째 시각으로 보자면 금줄 문화는 한민족의 형성 당시부터 내려져 온 문화라 할 수 있다.
현대에서는 두 번째 해석의 설이 유력하다. 실제로 금줄 문화는 유교 문화도 아니고 불교 문화도 아니다. 유교나 불교와는 상관없이 오롯이 전해져 내려온 우리 민족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의례문화인 것이다.
금줄을 만들기 위해 짚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새끼를 꼬고 걸쳐놓는 행위 하나하나가 엄숙하게 치러진다. 한낱 새끼줄이 주술적인 뜻을 가진 범상한 줄로 바뀌기 위해서는 무언가 의미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왼새끼’다. 새끼줄이 쓰이는 다른 모든 곳에서는 오른쪽으로 꼰 새끼를 쓰는데 유독 신성성을 요하는 곳에서는 왼쪽으로 꼰 새끼를 쓴다. ‘인간의 공간’에서는 늘 바른, 정상(正常)을 뜻하는 ‘오른쪽’이다. 그러나 ‘신의 공간’에서는 비정상(非正常)을 뜻하는 ‘왼쪽’ 세계를 펼친다. 잡귀는 정상적이지 않은 ‘왼새끼’에 놀라 감히 금줄 안을 범접하지 못한다. 금줄이 그 공간의 순결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부정을 막아 주는 금기와 신성성, 이것이 금줄이다.
금줄은 새끼줄에서 비롯되고 새끼줄 문화는 쌀농사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쌀농사가 시작되면서 볏짚이 생겨났고, 볏짚에서 새끼줄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와 같이 쌀을 먹고 살아온 인근 민족들에게도 금줄 문화가 있다. 일본의 오키나와에 가면 우리와 똑같이 짚으로 만든 금줄 문화가 있다. 오키나와의 금줄도 왼새끼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곳에 쓰지는 않는다. 우리 민족처럼 금줄을 실생활에 접목시켜 다양하게 활용한 민족도 없다.
이처럼 한민족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의례 문화는 이제 산부인과와 아파트, 김치냉장고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두르는 장식줄도 처음에는 금줄처럼 신앙적 외경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의 금줄만 미신으로 치부되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금줄을 제작해 판다는 광고에서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방유미 기자>  0166500428@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