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와 분수를 모르는 자들이 별의별 방법으로 고위직에 오르려하니, 백성들만 힘이들구나

요즈음 정계나 관계를 보면 능력과 자질도 없으면서 어떻게 하면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까 하고 별의별 방법을 모색하는 인간들이 있다. 참으로 염치와 분수를 모르는 자들이다. 이 뿐만 아니라 회사나 학교 등 모든 직장에서도 이런 자들이 허다하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하기야 고위직에 오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 대부분은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고위직에 오르려면 실력과 능력, 자질 뿐 아니라 인간됨됨이까지 겸비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업체나 관공서, 학교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자들이 설쳐대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이런 일들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 들어 더 심한 것 같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특히 60·70이 넘은 분들 중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직도 간혹 있으니, 이들은 인생을 헛살은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자(孔子)가 ‘60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70이면 자기 마음먹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노욕인지 노탐인지 아니면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인지…….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왜 이리 자리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일례로 숙종(肅宗) 때 재상이었던 윤지완(尹趾完)을 들 수 있다. 윤지완은 숙종의 명으로 대궐에 들어와 숙종을 뵙고 아침식사를 한 후, 밥상을 물리면서 때마침 한림원에서 숙직을 하며 밤새 고생한 사위 민진원(閔鎭遠)에게 생전복 하나를 보내주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사위가 생전복을 돌려보내면서 자기 밥상에도 생전복이 올라왔다고 하자, 깜짝 놀라 사옹원을 책임지고 있던 자신이 보고받지 못한 일이라며, 임금에게 사위이기 이전에 중전마마인 인현왕후의 오빠에게 생전복이 올라온 것은 사옹원을 총괄하는 사람으로서 사사로이 임금의 인척에게 생전복을 먹였으니 큰 죄라고 하면서 자기의 벼슬을 깎아줄 것을 임금에게 청한 일도 있다.
‘미암일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승정원(承政院)에 들어가 도승지(都承旨) 박계현(朴啓賢)과 만나본 뒤에 계(啓)하기를 ‘신(臣)이 출사(出仕)한지 40년이 됩니다. 세월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종사(從仕)한 날은 많지 않습니다. 출사한 후 용렬하고 어둡고 물정에 서툴러서 털끝만한 보답도 한 것이 없사온대 성명(聖明)을 만나 오직 장구(章句) 말학(末學)으로서 경악(經幄)에 시강(侍講)을 했으나, 능히 임금의 학문에 만에 하나 도움을 드리지 못하였는데, 도리어 용납하시고 칭찬해 주심을 자주 하시어 항시 한 일도 없이 은총을 받아 황송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노쇠한데다 질병으로 인해 물러가 쉴 것을 청하여 특별히 휴가를 주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은총을 입은 바, 보고 들은 사람이 놀라워했습니다. 신은 이에 감읍함을 금할 수 없었으며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금년 봄에는 신이 병으로 부르심에 나올 수가 없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하서(下書)가 간곡하고 정중하며 특별히 예우해 주시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서 품계를 정이품(正二品)으로 올려주시니 이는 또 분수의 밖에 벗어난 일이어서 삼가 사은을 하고 진정(陳情)을 하려고 병든 몸을 억지로 끌고 왔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높고 중한 품계는 용렬한 신이 함부로 처(處)할 바가 아니오니 바라옵건대 개정하도록 명하시어 명기(名器)를 중히 하소서’ 하였다.”
유희춘이 65세에 홍문관 부제학을 또 다시 제수받았는데 품계가 정이품(正二品)이었다. 부제학은 본래 품계가 정삼품인데, 정이품은 유희춘이 처음이었다. 유희춘은 선조(宣祖)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계속 사양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계속 맡아줄 것을 종용하자, 하는 수 없이 한양으로 올라와 품계를 내려줄 것과 사직할 것을 표명한 내용이다. 유희춘은 자기 분수를 안 사람으로, 결국 이 일 때문에 한양에 올라왔다가 병이 생겨 며칠 후 죽게 된다.
『논어(論語)』에 보면 ‘젊었을 때에는 혈기(血氣)가 미정(未定)이라서 여색을 경계해야 하며, 장년기가 되면 혈기가 바야흐로 굳세지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기가 되면 혈기가 이미 쇠하므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가슴에 새겨두기 바란다.
자신의 능력과 자질, 분수를 알고 처신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을 알고 출처진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서경(書經)』에 보면 ‘어진 사람을 밀어주고 능력있는 사람에게 양보하면 모든 관리가 화합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처럼 자리에 쓸데없이 연연하지 말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능력과 자질이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양보의 미덕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잘 살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자기보다 능력과 자질이 더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직위를 한 단계 내려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괜한 욕심 부리지 말자. 특히 60·70대가 되어서도 노욕, 노탐을 일삼으면 추해지는 법이다.
송재용<동양학 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