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서울시내 학교에서는: 이순의 ‘영하 4도’ 읽기


군사문화가 지배하던 70년대의 교육현장
교장은 교육위원회 지시대로 영하 4도가 되지 않으면 난로를 피우지 않았다.


1960년대 이후 우리문화는 점차 군사문화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군사문화의 대두는 쿠데타로 집권한 당시 박정희 정권의 태생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근대화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한국의 사회경제적인 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70년대는 이러한 군사문화가 전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교육현장 또한 이러한 군사문화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L. 알튀세가 지적했듯이 원래 학교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다. B. 브레히트는 ‘상어가 사람이라면’이라는 우화 속에서 교육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상어의 입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물고기를 형상화하여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본질을 비판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의 모든 갈등은 이러한 학교의 성격 때문에 발생한다.
이순의 ‘영하 4도’(『세계의 문학』, 1979. 봄호)는 군사문화가 지배하던 70년대 교육현장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자중학교 교사인 이혜숙은 우수교사였다. 여기서 우수교사란 혜숙이 남편에게 “세가지루 끝내주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등록금을 걷는 것 한가지 청소 감독하는 거 두가지 결석생 안 내는 것 세가지”라고 털어놓듯이 학교정책에 불평 없이 충실히 따르는 교사를 말한다.
당시 학교는 “북괴의 적화통일의 야욕 앞에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만 되는 것이며 이런 준전시체제에서 우리 후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사치 등속을 탐하는 안이한 의식구조의 개편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느냐고 열변을 토하는 장학사와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교장”에서 볼 수 있듯이 냉전이데올로기와 군사문화가 지배하는 곳이었다.
영하 4도가 되지 않으면 난로를 때지 못한다는 교육위원회의 연료절약 지시사항을 1도는 커녕 1부도 어기지 않는 교장에게서 군사문화의 단면을 찾을 수 있다. 학교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었던 도시락 검사를 통해서 군사문화의 또 다른 단면을 읽을 수 있다. 학교에서 선생들이 포크를 들고 다니며 도시락의 30%가 잡곡인지를 검사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 이러한 코미디가 당시 국가의 혼식정책이었고 학교의 공식행사였다. 하지만 도시락 검사는 한바탕을 웃고 끝낼 배삼룡과 이기동의 코미디가 아니었다.
생일이라고 이웃집에서 빌린 쌀로 도시락을 싸온 순옥이라는 혜숙의 반 학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벌주어야 하는 비극이 이 코미디의 본질이었다.

이러한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 혜숙은 “항상 한 개의 썩은 사과가 창고전체의 사과를 썩게 해요. 창고 관리인으로서 그런 일을 묵과할 수 없겠어요. 단연코 그 한 개를 골라내서 나머지 신선한 사과를 보호하는 게 내 임무야”라는 사회유기체론과 같은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교육관과 군사문화의 반영이었다.
이런 혜숙과는 반대로 강경희 선생은 항상 장학사와 학교당국과 갈등을 벌이는 인물이었다. 혜숙은 대학후배인 강경희 선생에 대해서 묘한 라이벌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강경희 선생이 자신의 꿈이었던 시인이란 점이 처음부터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던 강경희 선생은 교무실의 동네북이었는데 제 1고수가 교감이고, 제 2고수가 교무주임이라면 혜숙은 제 3고수였다. 강경희 선생은 교육지침인 ‘일일일선(一日一善)’을 확인하기 위해 일기검사를 강요하는 과주임에게 “일기를 검사하다니요? 이건 야만이예요. 일일일선의 실천도 그렇지요. 착한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매일 어떻게 착한 일을 하나씩 합니까? 그렇게 착하게만 살 수 있는 세상이에요? 선생님들은 하루의 한 건 이상 착한 일 건수를 올리실 수가 있으세요?”라고 반발을 한다. 교육정책과 학교행사에 항상 문제제기를 하는 강경희 선생을 학교에서는 용인할 수 없었다. 결국 교장은 강경희 선생을 학교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하고 혜숙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고 명령을 한다.
그런데 혜숙이 사직권고를 하기 전에 강경희 선생이 먼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교육위원회 정책이었던 일기검사를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정직하게 글쓰는 법을 가르쳤던 강경희선생은 학생들이 일기장을 통하여 다른 학생이나 선생들을 고자질하기 시작하자 크게 실망을 한 것이다. 학교와 문교당국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나자 학교에 남아있을 이유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70년대 학교현장을 지배한 것은 군사문화였다. 이러한 상명하복의 권위주의는 선생들과 학생들을 못 견디게 만들었다.
“우린 이런 식의 교육은 필요 없어/더 이상 생각을 조종당하고 싶지 않아/교실 안에서 더 이상 비꼬는 말을 듣긴 싫어/제발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둬//이봐 선생들, 아이들 좀 그냥 내버려두라구//결국 모든 건 벽돌이 되어/내 주변에 벽을 만들어갈 뿐이야”라는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가 가슴을 찌르는 상황이었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연구교수>

▲ 군사문화의 극단적인 예로 아이들은 도시락 속까지 통제 당해야 했다.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