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국 문화 / 칠석제 - 인연의 문화

칠월칠석 오늘밤은 은하수 오작교에/ 견우직녀 일년만에 서로만나 만날세라/ 애야애야 애야 좋네 칠석놀이 좀더좋네/ 까치까치 어서 빨리 날아와서 은하수에 다리놓아 견우직녀 상봉시켜/ 일년동안 맛본설움 만단성화 하게하소. (칠석요)

은하수 다리건너 견우직녀 상봉하네
연꽃과 은행 열매를 주고 받으며 영원한 만남을 다짐해

“옥황상제는 자신을 딸 직녀를 하늘강 건너편에 살고 있는 견우에게 시집을 보내고, 그들은 곧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후로 직녀는 전혀 베를 짜지 않았고 견우도 소를 치는 일을 게을리 했습니다. 이를 본 옥황상제는 노여움에 가득차 직녀에게는 은하수 서쪽에서 베를 짜라 하고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서 살게 했습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그림이 있다. 견우와 직녀는 하늘의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가 음력으로 7월 7일이 되는 날에야 비로소 만나게 된다. 어릴 적 할머니 무르팍에 누워 듣던 전설 속 이야기가 이래봐도 고구려 때부터 내려오던 우리의 고유의 전통 축제이다. 칠월칠석은 역사적, 천문학적, 음양의 만남으로도 해석된다.
우리 조상들은 왜 이날을 명절로 삼았을까? 매년 음력 7월이 되면 장마 전후로 마을사람들 모두가 우물을 청소했고 하천과 개천의 재방을 다시 쌓으며 장마를 대비하며 그간 비로 흐트러진 마을의 이 곳 저 곳을 정비했다. 일을 모두 마친 마을 사람들은 정화수 한 그릇 떠다 놓고 가족의 무병장수와 풍년을 빌었다. 이 날은 마을의 대청소가 있는 날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큰 잔치가 열리기는 날이었다.
견우는 땅의 사람을 상징하고 직녀는 하늘의 사람을 상징한다. 또 칠월 칠석은 일몰 전에 해와 달이 떠서 음기와 양기가 균형을 이루는 날이라고 해 길일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땅의 사람인 견우를 대신해 하늘의 사람, 직녀에게 제를 지냈고 이것이 바로 칠석제이다.
또 칠월칠석은 남자가 여자에게 구애하는 날이기도 했다. 남녀의 자유로운 만남이 금지시 되었던 조선시대에는 남녀가 당당히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날이었던 것이다.
견우와 직녀 설화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나타나 있듯이 칠석제는 수천년을 한민족과 하메해 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은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칠석제를 금지했고 이 때부터 마을의 큰 행사 중 하나였던 칠석제는 절에서 연등을 켜는 정도의 종교적 행사로 퇴색해 갔다. 하지만 칠석제는 분명 다른 전통 제(祭)와는 구분 되는 전통의례이다. 여기서 다른 전통 제와의 차이점이라 하면 오직 여성들만으로 제관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대사회에서는 여성이 제의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칠석제는 원래 우리의 것인데 일본 센다이 지방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마치 자기네 것인 양 매년 행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한국여성형토문화원의 차배옥덕(55) 원장은 지난 11일 한강 선유도 공원에서 70여년 만에 칠석제를 재현해냈다.
“고유의 전통잔치나 민족축제가 일제 때 차단되어 잊혀 진 것들이 많은데 잃어버린 고대문화를 되찾기 위해 칠석제 재현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칠석제 재현행사를 한강 선유도 공원에서 치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강 선유도 공원은 2호선 당산역과 합정역이 교차하는 곳인데 예부터 당산은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고 합정(合井)은 단어 그대로 물이 모인다는 뜻이다. 이는 곧 ‘화합’을 의미한다.
칠석제에서 남녀가 연꽃과 은행 열매를 주고받는데 여기에도 깊은 속뜻이 숨어있다. 연꽃은 고대 한민족의 국화였다. 연꽃의 꽃말은 ‘참 만남’으로 오랜 세월 서로가 떨어져 있으면서도 만남의 약속을 잊지 않는 견우와 직녀를 길이는 뜻이다.
또 은행나무는 예부터 장수나무로 알려져 왔으며 견우와 직녀의 ‘변치 않는 만남’을 상징하며 연인의 징표로 전하는 것이다.
최근 젊은이들은 칠석제에 연꽃과 은행 열매를 주고받는 대신에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만남을 기념한다. 원래 발렌타인데이는 노인과 아이들이 사탕과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풍속이었다. 하지만 이를 본 일본의 상인이 초콜릿과 사탕 판매의 매출을 늘리기 위해 이 날을 발렌타인데이로 지정했고 어느새 이 것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온 것이다.
결국 발렌타인데이는 그 의미도 존재도 불분명한 국적불명의 기념일이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 부터는 로즈데이, 빼빼로데이 등 수 많은 데이(Day)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인연과 만남의 소중함을 길이기 위함보다 상인들의 장사속에 의한 기념일로 전락해버렸다. 앞으로는 발렌타인데이의 초콜렛 대신 칠월칠석에 사랑의 영원함을 뜻하는 은행 열매를 주고받는 것은 어떨까?
혹자는 평생을 헤어져서 지내는 견우와 직녀에게서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을 어찌 느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역사적, 신화적으로 볼 때 그들이 떨어져 있는 1년은 우리에게 1시간이 채 못 되고 인간이 상대에게 느끼는 사랑이 고작 2~3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백, 수천 년을 이어온 인연이다. 결국 떨어져 지내는 시간만큼 그들의 인연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견우와 직녀가 다음의 영원한 만남을 위해 다시 헤어지고 이별에서 다시 기다림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음력 7월 16일부터 이웃마을 간에 길쌈짜기 놀이를 하며 즐겼는데 이를 ‘가위’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한가위’라 부르는 것이다.
어르신들은 아니, 얼마 전 장가를 간 삼촌마저도 요즘 젊은이들은 인스턴트 세대라서 그런지 모든지 빠르다고 한다. 만남 또한 퀵(quick)이다. 하루에 열 번을 만나더라도 단 한 번의 만남을 소중히 여긴 견우와 직녀처럼 매번 소중한 인연과 만남을 지켜갔으면 한다.
한국의 전통 축제 중에는 젊은이들이 함께할 만할 축제가 태무하다. 칠석제가 견우와 직녀의 숭고한 사랑을 배우고 터득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된다면 해마다 열리는 칠석제에는 연인들로 인해 점점 비좁아질 것이다.
▲ 칠석제에는 오직 여성들만으로 제관을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