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까지 덮친 허리케인

아직까지 사망자 집계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레이 나긴 뉴올리안스 시장은 이 도시에서만 수 천명이 훨씬 넘는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항간엔 1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내긴 시장은 뉴올리언스가 최고등급 허리케인의 직격탄을 맞은데다 제방까지 일부 붕괴돼 시의 80%가 물에 잠겼는데도 연방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대규모 침수사태 발생 뒤 이재민센터의 음식물과 식수까지 동이 나고 약탈꾼과 무장한 범죄자들이 거리를 장악할때 까지 거의 1주일 동안 연방정부가 한 일이 무엇이냐고 강력히 항의한다. 내긴 시장은 지역 방송과 인터뷰에서 “정부가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대재앙이 닥쳤는데도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는 연방 관리들은 모두 꺼져 버려라”고 목청을 높였다.
한편 현지의 험악한 분위기를 의식한 부시 대통령은 지난 2일 피해지역 시찰에 앞서 “연방 당국의 관계자들이 구호노력을 진지하게 펼치긴 했지만 그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정도가 못됐다”며 연방정부 차원의 구호노력에 문제가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소멸 됐지만 무정부 상태가 지속돼 극도의 혼란이 후폭풍처럼 뉴올리안스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CNN은 현장 리포트를 통해 “슈퍼돔과 뉴올리언스 컨벤션센터 주변은 여기저기 흩어진 기저귀와 지뢰처럼 널린 오물이 거리로 역류한 하수와 섞여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고 전하고 “이들을 휴스턴 등지로 옮기려는 노력은 처음부터 차질을 빚고있다”고 말했다. 컨벤션센터에 모인 이재민 가운데 노약자들이 줄이어 숨을 거두고 있으나 사체를 옮길 곳도, 사체를 치울 여력도 없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숨진 노인은 벽쪽으로 밀려나 있고 또다른 남성의 사체는 흰 천에 덮여있을 뿐이다. 한 여성은 “개가 죽어도 땅에 묻는데 우리는 짐승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하며 울먹인다. 다른 이재민은 “정부에서 물과 음식도 주지않고 벌써 며칠째 우리를 내팽개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있다. 슈퍼돔도 형편이 나은 것이 없다. 화장실이 넘치고 수도가 끊긴데다 식수와 음식마저 동이나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이재민 사이에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늑장구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뉴올리안스 인구의 70%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흑인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신문이나 TV를 잘 살펴본 독자들은 이번 피해자가 모두 흑인인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백인들이 이렇게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연방정부가 이렇게까지 늑장 대응을 했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잠정적인 집계에 따르면 피해자의 99%가 흑인이다. 유럽 주요언론은 이번 재해의 최대 피해자는 흑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백인 이웃에 비해 가난한 흑인들은 허리케인이 닥쳐 옴에도 대피보다는 잔류를 택했고 그결과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움직일 자동차가 없고, 대피해서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집을 떠나서는 숙박비와 식비가 없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과 경제적 격차 속에서 쌓인 분노는 약탈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대혼란을 불러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48만5천 여명의 인구가 살고있는 뉴올리언스의 흑인 인구 점유율이 전국에서 5번째로 높은 도시라고 지적하면서 “이번 대혼란은 인종문제 차원에서 접근해야 이해할 수 있다고” 논평했다. 뉴올리언스 흑인들의 절대다수는 빈곤층에 속해있다.
지금 뉴올리언스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암울한 시절, 절망적인 모습의 흑인들이 울부짖던 슬픔의 소리가 다시 메아리치고 있다. 도시에서 물을 모두 빼내는데 6개월이 걸릴지 모른다고 우려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서 앙금을 지우는데는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경제적으로 세계 최대 국가라고 자부하고 있는 미국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 한인들은 믿지 못할 미국내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 뉴올리언스 등 피해지역 주민들을 돕자며 따뜻한 손길을 보내고 있다.
진천규  okjin@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