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삶의 희망은 있다. - 정도상의 ？ 서울 그 어느 쓸쓸한 사랑？

삶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이 함께 사는 곳
‘사당동’에 모여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하위 노동영역에서 일하며 지낸다

달이 지상 어느곳보다도 가깝기에
‘달동네’라는 설도 있고
‘달’이 ‘산’을 뜻하기에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산비탈 기슭에 블록과 흙, 갑바를 이용하여 얼기설기 만들어진 집들이 있다. 산 아래쪽으로부터 위쪽을 향해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기슭에는 하나의 번지지만 수백의 세대가 모여 살았다. 20여년 전부터 개발되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지만, 동작대교를 넘어 남태령으로 향하는 도로의 오른쪽은 ‘달동네’로 불리는 동네가 있었다.
달이 지상의 어느 곳보다도 가깝기에 ‘달동네’라 불려 졌다는 설도 있고, ‘달’이 ‘산’을 뜻하기에 ‘산동네’를 ‘달동네’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도 있지만, 둘 다 평지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삶터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곳이 가난한 자들의 땅이기 때문이리라. 다소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달동네’라는 이름 뒤에는 삶의 애환과 고통이 있다. 흑석동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야 들어갈 수 있는 동네였던 사당동은 과천시를 잇는 동작대교가 1984년 개통되면서 현재의 아파트촌으로 바뀌게 된다. 서울의 달동네들의 개발과정이 그렇듯 사당동의 원주민들 대다수는 이곳을 떠나고 타지인들이 개발된 동네의 주민이 되었다.
고향을 등지고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찾아든 인구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던 이유는 한결같다. ‘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는 절박함 때문이다. 정도상의 ？서울, 그 어느 쓸쓸한 사랑？은 각기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사당동’에 흘러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당동’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하위 노동영역에 배치되어있다. 일용 건설노동자, 파출부, 봉제공장노동자, 버스 안내양 등등 이들의 직업은 도시 상층 계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의식은 도시에 살면서도 농촌적인 연대감을 유지하고 있다.

‘쓸쓸한 사랑’에서 등장하는 마을의 공동 수도인 ‘약수터’와 ‘친목계’는 자신들이 떠나온 고향의 ‘빨래터(혹은 우물터)’와 ‘품앗이’의 연장이다. 이곳은 달동네 사람들의 대소사가 거론되는 공회당이자, 여론이 형성되고 유포되는 곳이다. 어제 밤에 있었던 일부터 미래의 꿈까지 이곳에서 향유되는 이야기의 소재는 제한이 없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가슴 속의 울분을 털어놓기도 하고, 희망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세상을 향한 푸념을 공유한다. 비록 ‘감 나라, 배 나라’식의 언론이 형성되지만, 이들의 언론 속에는 자신들과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삶에 대한 애착은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설 때만 자신이 살아남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태와는 다른 것이다. 각기 다른 신분과 출신 배경의 이들이 모여 사는 ‘사당동’ 달동네의 ‘약수터’는 밑바닥이지만 삶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이들의 진솔함이 공유되는 곳이다.
소매치기 전과를 갖고 있고, 노름꾼인 ‘노식’과 동거한 지 10년만에 결혼식을 올리는 ‘깐돌이 엄마’ ‘연자’를 위하여 사당동 달동네의 친목계 사람들은 바쁘다. 동네의 대소사가 그렇듯이 모든 준비는 약수터에서 이뤄지고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집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동네에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작은 공간마저도 없을뿐더러 상수도 시설마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네 사람들은 ‘연자’ 부부를 위한 잔치 준비에 정신이 없다. 왁자지껄함과 소란스러움이 잔치를 준비하는 여느 집과 다르지 않지만, 사람들은 털어놓을 수 없는 사연을 지니고 있다.
소매치기와 노름으로 형무소를 제 집 드나들듯이 하는 ‘노식’과 산 지 10년만에 결혼식을 올리는 ‘연자’의 결혼식은 기쁨이 배제되어 있다. 중학교 1학년인 ‘깐돌’이의 푸념 때문에 늦깍이 결혼식을 올리지만, ‘연자’의 기분은 서럽다. 둘 다 일가친척 없는 고아인데다, 내일 결혼식을 치르는 남편은 도박에 빠져 몇 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결혼식을 치르기 위하여 양복 값과 반지 값을 갖고 나간 남편은 도박판에 빠져 반지 값을 날리고 달랑 양복만을 찾아서 들어온다. ‘연자’는 분노하기 보다는 체념한다.
‘연자’와 파출부를 같이 나가는 ‘남원 댁’의 속 또한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이다. 2남 1녀의 자식이 있는 그녀는 노상 자식들 생각뿐이다. 동생들을 희생시키면 공부를 시켰던 큰 아들은 10년 넘게 대학을 다니면서 감옥을 두 번이나 갔다 왔고, 졸업한 이후에도 제 밥벌이를 하지 못하고 있다. 딸은 버스 안내양을 하다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고 난 이후 ‘남원 댁’의 가슴 한 쪽에 응어리가 되었다.
그나마 공장에 다니며 집안에 생활비를 보태던 작은 아들은 공장에서 파업을 주도한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 나와 요양 중이다. ‘남원 댁’에게 두 아들의 삶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자식들의 삶은 항상 한(恨)이 되는 것이다.
서른여섯 살의 대머리 노총각과 서른다섯 살의 다리를 저는 딸을 결혼시키면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던 ‘남원 댁’이 ‘깐돌 엄마’에게 딸의 예복을 보내는 것은 동병상련의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깐돌이 엄마’는 또 다른 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창하게 ‘도시빈민의 연대의식’을 논하기 전에 가슴에서 치받아 오는 슬픔의 공유이기 때문이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서울시내 한복판에도 여전히 달동네는 남아있다.
김재관  chow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