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새롭게 정치·문화적 권력을 흡수한다

어린시절 나는 잦은 이사와 궁색한 집안사정으로 인해 이렇다할 장난감도 절친한 친구도 없는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 그런 나에게 텔레비전은 무언가 결핍되어 있던 유년을 지켜준 친구이자 놀이터, 그리고 상상력의 공간이었다. 심금을 울렸던 무수한 만화영화들.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단연 ‘프란다스의 개’라 하겠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풍차와 우유배달 견차(犬車)의 그 이국적인 정서,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 가난한 일상은 그때의 내 마음을 쥐고 흔들기에 충분했으리라.
이제 네로를 기억하는 이라면, 그의 절절했던 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네로가 죽던 그 겨울밤의 정경을. 앙트워 대성강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던,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그림을 보며 네로와 파트라슈는 짧았던 생을 마감한다.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라니! ‘만지지 마세요’라고 주의를 준다면야 눈으로만 보는 그림이 닳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나는 어린심정에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꼬마였던 그때는 시대에 따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네로의 소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사진이 출현하고 보편화되기 이전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거대한 아우라였다.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당대 권력과 부의 편린들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화가들의 그림과 조각은 성당 깊숙한 곳, 은닉된 공간에서 존재했다. 즉, 19세기 사진의 등장은 이미지의 복제를 가능케 하고 문화의 영역을 변화시킨 큰 사건이었다.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특권층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이미지의 고급화·신비화가 벗겨지게 되었으며, 미술영역은 가지고 있던 권위를 잃었다는 벤야민의 논의는 문화인식에 대한 통찰로서 음미해볼만 하다. 그것은 곧 시각예술이 대중의 영역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예술(미술)은 은폐가 아닌 공개를 목적으로 성행하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적 의미의 대중이 대도시에 등장하게 되자 예술과 이미지의 영역은 엄청난 수용자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매스미디어의 영역은 ‘멀티미디어’라는 용어의 등장과 함께 문자, 이미지, 소리를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복합지각의 공간을 실현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예술의 대중화라는 혁명적인 역사는 더 이상 우리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나, 내 손 안의 예술을 꿈꾸며 살아가는 세대이다. 아름다운 후경, 독특한 객체, 평범한 타자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 카메라이다. 이러한 매체를 이용하여 개인은 자신의 미니홈피, 블로그를 통해 끊임없이 이미지를 창조·재생산해 나간다. 시스템 자체가 이미지의 업로드와 스크랩 형식으로 되어있는 싸이월드의 경우, 젊은 세대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매우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또한 대중들은 더 이상 이미지를 이미지로서만 소유하지 않는다. 포토샵 기능을 통한 조작·변형 등이 그것의 단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제 이미지는 풍자, 패러디, 독설의 코드와 함께 그 자체로 새로운 차원의 정치·문화적 권력을 흡수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들은 단순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은 않다. 과거의 이미지가 권위 그 자체였다면, 지금의 이미지는 현 사회에 대한 은폐과 폭로, 조작과 단순화의 과정을 총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처참한 사진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실체를 포장한 이미지가 선거의 승부수로 변모되고, 불특정 타자의 사진이 네티즌들 속에서 마녀사냥·사이버테러 수준의 도구로 이용된다. 기술복제의 능력이 예술을 탈 권위화 시키고, 혁명의 중요한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벤야민의 낙관은 절반쯤 한계에 부딪혔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생산한다. 그 문화는 낙관과 비관을 넘어서, 실체와 이미지, 대중의 욕구와 개인의 정체성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이제 대중문화는 그에 걸 맞는 새로운 정체성과 인권개념을 요구한다. 전망은 항상 불확실하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진단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곧 그 사회의 문화적 성숙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지평이기 때문이다.
이진주<국문·3>

▲ 사진의 등장으로 예술은 은폐가 아닌 공개를 목적으로 성행하게 됐다.
이진주  pearl298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