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청탁이 극심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다.
공직자나 정치가들이
할일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

자고로 인사 청탁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문제가 수없이 발생해왔다. 요즈음도 TV나 신문 등 매스컴을 통해 인사 청탁과 관련된 보도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언제쯤 없어지려는지……. 문제는 능력과 자질, 경험도 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려고 청탁을 하는데 있다. 이렇게 무리를 해서 자리에 앉히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하다.
그런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관직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이다. 이런 행위는 돈을 받고 관직을 파는 행위보다 깨끗한 것 같지만, 사실 이 둘은 같은 행위에 불과하다. 관직으로 남에게 인정을 베푸는 행위,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예전에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아직도 그 사람의 은혜를 갚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에게 관직을 마련해줌으로써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심정은 이해가 가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특히 이런 일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더욱 그러했다. 자기를 도와준 사람들 중 능력과 자질이 있고 해당 분야에 대해 식견과 경험이 있는 경우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그만큼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기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인사는 만사’라고 했지만 말 뿐이지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하고 말았다. 더구나 인사 청탁을 통해 사람을 쓰는 경우 십중팔구는 실패하고 만다.
『미암일기』에 인사 청탁과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이 날 병조판서 강사상(姜士尙)과 가까이 앉아 있다가 병조참의가 와서 청하는 일이 있음을 보고 내가 묻기를, ‘권관(權官)의 자리로 남들이 별로 탐내지 않는 곳이 있소?’ 강공(姜公)이 ‘있지요’ 하면서 다시 묻기를 ‘영공(令公)이 천거하고 싶은 사람이 있소?’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고향 먼 친족으로 내금위(內禁衛)를 지내고 있는 나수(羅袖)라는 사람이 있는데 집은 가난하지만 청렴합니다. 일찍이 곡포권관(曲浦權管)이 되어 군졸들을 잘 어루만졌는데 이제 나더러 권관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곳이라면 할 수 없지만, 남들이 탐내지 않는 곳이라면 도모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했더니 강공이 ‘알았습니다’ 하고 즉시 기록을 했는데, 강공이 다시 손수 ‘부제학이 정사일(政事日)에 과차(課次: 순차임명)를 고해 달라 청하다’라고 써서 서리에게 주었다. 내가 나수의 일을 부인과 관중(寬中)에게 말했더니 크게 기뻐하였다. … 아침에 광릉참봉(光陵參奉) 이대유(李大有)와 첨지(僉知) 이원록(李元祿)의 조카 이정(李瀞)이 찾아와 인사를 하기에 내가 술대접을 했다. 이정에 대해서는 새 판서가 나온 뒤에 미관말직이라도 의망케 해달라는 그의 숙부 편지에 내가 판서에게 힘써 보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 본시 이정의 숙부 이원록은 죄 없이 오랫동안 귀양살이를 하다가 돌아왔고, 또 사림을 신구(伸救)한 공로도 있으니 그 자제라도 벼슬을 제수케 하여 보답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희춘이 병조판서에게 친척의 벼슬자리를 부탁하고, 옛 동료의 조카에게 인사 청탁을 약속한 내용이다.
비록 미관말직의 벼슬자리를 청탁한 것이지만 옳지 못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관말직의 벼슬자리에 대한 인사 청탁이 흔했던 것으로 보이며, 또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역사를 상고해 보면 고위직에 있으면서 인사 청탁을 받지 않았던 사람도 많았다. 반면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이를 악용하여 자신의 심복을 요직에 앉혀 놓고 국정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했던 인물도 많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임보(李林甫)이다. 이임보는 중국의 사가(史家)들이 중국 역사상 가장 음흉한 간신으로 꼽았던 인물이다. 이임보는 당(唐) 현종(玄宗) 때 재상을 지냈던 인물로, 19년 동안 정권을 장악하여 자기 마음대로 했다. 그래서 당 현종이 황제 노릇을 했는지, 아니면 이임보가 황제 노릇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의 위세는 황제를 능가했다. 인사 청탁을 해서 사람을 잘못 쓰면 이임보 같은 간신이 나올 수 있다.
어쨌든 인사 청탁이 극심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다. 어디 망하는 것이 나라뿐이겠는가? 학교나 기업체들도 마찬가지이다.
공직자나 정치가가 되면 일생동안 사회의 주시 속에서 살아야 하며, 죽고 난 뒤에도 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사람들이 철저하게 감시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의 평가는 무게가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공직자나 정치가들은 이를 명심하고 인사 청탁을 하지 말기 바란다. 오직 할 일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것뿐이다. 특히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