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라는 감옥속에서 살았던 80년대 서울시민
평범한 가정주부도 택시기사와 나눈 몇마디 때문에 연행되던 시대

“감시의 눈은 얼마나 무서운 것이던가
누군가가 자기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것 같은 불안 의식은 주체성을 빼앗고
타자화된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다”

80년대는 무서운 시대였다. 기형도는 이 시대를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 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 넘쳤다/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입속의 검은 잎」)라고 노래했다. 죽음이 죽음이 되지 못하고 말이 말로 통하지 않는 시대는 공포의 시대였다. 80년대 서울시민들은 공포라는 감옥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윤정모의 「신발」은 이 공포의 시대에 대한 고발이다. 당시 독재 권력은 어디에서나 도사리고 앉아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권력의 눈초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끔찍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 조지 웰즈가 「1984년」에서 만들어낸 빅브라더의 세상이었다.
주인공인 여인은 평범한 소시민 가정의 전업주부였다. 이런 여인이 갑자기 형사들에게 연행을 당했다.

“「아주머니, 일 월 일 일 오후 두시 쯤 택시를 탔죠?」…<중략>…「그게 어쨌는데요?」 「그 때 운전수에게 무슨 말을 했죠?」…<중략>…「이것보세요, 아주머닌 그 운전수에게 돈 천원을 더 주면서 참고 기다리면 좋은 일이 올 거라고 말했잖아요」…<중략>…「네 그랬어요」…<중략>…「그렇다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게 어떤 뜻이오? 소위 저쪽에서 말하는 남조선 해방입니까」 「네에?」”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동안 여인은 어제 오후에 탔던 택시기사가 자신을 간첩용의자로 신고한 것을 알게 되었다. 택시기사의 어려움에 동병상련의 기분으로 동정을 표한 것이 엉뚱하게 간첩으로 몰리게 된 이유였다. 이런 어이없는 고발을 접수한 사직당국은 여인에게 혐의가 없음을 알면서도 이상한 방향으로 일을 몰고 갔다. “한시택시 서울 4바 6537. 운전기사 박덕현은 평소 고발정신을 살려…” 여인이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즉심에 넘기고,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한 택시기사에게는 표창장과 개인택시 면허를 주는 기막힌 현실이었다. 당대 사회가 평범한 택시기사들이 언제든지 빅브라더의 눈이 될 수 있고, 택시를 타는 시민들은 언제든지 간첩이나 불온분자가 될 수 있는 사회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감시는 곧바로 처벌로 이어진다. 처벌이 없으면 감시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인은 즉결심판에서 구류 열흘을 선고받는다. “모두들 앉엇! 여러분들은 죄인이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앉은걸음으로 유치장까지 들어간다. 출발!” 인솔자의 구령에 맞춰 들어간 유치장 안은 인간성이 상실된 치욕의 공간이었다. 유치장 생활은 입방 때 새파랗게 젊은 전경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명령에 따라 앉았다 섰다를 되풀이 하면서 참수형을 당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가혹하였다.

“「넌 어느 나라에서 왔니? 니 눈에는 이 할머니가 손아래 아이로 보이니!」…<중략>…「이게 근무자에게 대들어? 모두 끓어앉앗!」 그 보복으로 전 여성이 토끼뜀을 뛰었고, 머리를 거꾸로 처박아야 했고, 그것도 부족해서 뒷 창까지 열어두는 벌을 받았다. 우향우와 좌향좌의 방향도 모르는 할머니가 그 체벌을 견디지 못해 용변을 지리고 말았을 때 여인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용서를 빌었다. 저 때문이에요, 할머니 저 때문에”

이렇듯 겨울추위를 막아주지 못하는 북극 같은 유치장 냉기 속에서 인간의 정이란 사치에 불과한 것이었다. 엉뚱한 무고로 유치장에 들어온 여인에게 구류 10일은 정말 가혹한 처벌이었다. 하지만 유치장에서 풀려나는 여인에게 과장은 “아주머닌 반성 많이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부조리의 극치였다.
끔찍한 유치장 체험으로 여인은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여인은 사나이가 닫고 나간 문을 주시했다. 지난 열이틀 동안 여인은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여기서 조사를 받는 동안에도 변소까지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여인은 불안한 눈초리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가 자기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불안의식은 사람들의 주체성을 빼앗고 타자화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윤정모의 「신발」은 서울의 한 평범한 가정주부의 체험을 통하여 80년대 우리사회가 J. 벤덤이 고안한 원형 감시시설과 같이 구조화되어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80년대는 평범한 택시기사들이 언제든지 빅브라더의 눈이 될 수 있던 사회였다.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