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배격이 우리의 문화를 절름발이로 만든다

당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정말로 당신인가? 인간을 이루고 있는 가정, 학교, 법, 제도, 사회, 경제 등 모든 복합적인 요소들은 끊임없이 개인을 조정하고 규정한다. 남성중심의 가족제도와 가부장 문화, 학창시절의 몇 할을 차지하고 있는 조례시간의 군사적 문화패턴, 그리고 거의 모든 제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관료적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이 사회망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뿐이랴 심지어 내면적인 문제인 ‘사랑’이란 개념까지도 사회는 끊임없이 조율하고 있다.
여기, 자기 자신으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죽임당한 사람들이 있다. 지난 7월, 이란에서 두 명의 게이 청소년이 동성애라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공개처형 당했다. 우리는 그 사건을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만이 살인인가? 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잔인함보다 더욱 잔혹하고 공격적인 살인일 것이다. 몇 년 전, 연예인 홍석천씨는 커밍아웃을 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공중파에 출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세간의 모진 조롱까지 받아야 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단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는 있지만, 실제 이반들의 삶은 언제나 ‘소수’로 명명되어 있다. 이들의 억압받는 삶과 이들을 억압하는 사회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동성애(queer)코드는 대중문화 속으로 상당부분 수용되고 있다. 케이블 방송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외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아름다운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퀴어 애즈 포크’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치터스’, ‘프레시맨 다이어리’ 등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 커플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성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시트콤 ‘섹스 앤 시티’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 같은 영화에서는 공식처럼 주인공 주변에 게이 친구가 등장한다. 또한 동성애 코드는 공중파 방송에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의 이켠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여성과 경쟁을 벌이는 장면이라든가, 휴대폰 광고에서 동성커플이 전면에 부각되는 장면에서 동성애코드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코미디에서 여성화된 남성이 같은 남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장면은 아주 흔한 예이기도 하다.

이렇듯 동성애적 요소는 대중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이 은폐되어 있던 동성애 문화를 공개적 담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상당수 희화화 되어 있거나, 타자화 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매체 속에서의 동성애는 대중들에게 이질적이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동성애는 하나의 ‘담론’이 되기보다 흥미의 대상으로 그치고 있다. 동성애 인권단체로부터 항의성명을 받고 시정하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도 몇몇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동성애’를 금칙어로 규정하고 유해사이트로 분류했다. 심지어 지난 7월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투데이>에서는 ‘이반문화확산’이라는 보도를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왜곡된 담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반’은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용어로, ‘二般’혹은 ‘異般’ 즉, 일반과 차이를 두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반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용어이다. 스스로 문화방송임을 자처하는 공영방송에서, ‘이반’이 단순히 이성애에 반대한다는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시종일관 동성애를 ‘범죄’로 몰아붙이는 것은 개탄할 만한 일이다. 이에 대해 동성애인권단체와 민주노동당은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문화를 수렴하기도 하지만, 대중에게 문화를 주입하기도 한다. 문화를 재생산하는 대중매체가 끊임없이 소수를 소수로서 규정하고 부정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과연 무엇인가? 주류의 입장에 있는 문화만을 옹호하고 나머지를 배격함으로써 우리는 문화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있다.
이진주<국문·3>

▲ 미국 빠울리스타에서 열린 게이축제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이진주  pearl28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