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는
백성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할 지언정
결코 얕잡아 보아서는 안된다”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겠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일부 몰지각한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사적인 일에 부하 직원들을 동원하였다가 물의를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하기야 필자도 군복무 시절 동료 병사들과 함께 부대장 관사에 가서 거의 온종일 잡일을 한 적이 두세 번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똥오줌도 가릴 줄 모르는 위정자나 고위 공무원들이 있다면 이런 작자들은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과 같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인간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에만 급급할 뿐 국가와 국민을 위할 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많으면 나라의 앞날은 뻔하다. 백성들을 가장 중시하라고 했던 성현(聖賢)들의 말씀은 이들에게는 한낱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서경(書經)』에 보면 ‘백성들을 가까이 할지언정 얕잡아 보아서는 안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만 나라가 편안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므로 위정자는 백성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할지언정 결코 얕잡아 보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므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위정자나 고위 공무원들은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어쨌든 위정자나 고위 공무원이 사적인 일로 국민들을 수고스럽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런 몰상식한 인간이 있다면 즉시 퇴출시켜야 한다. 이는 학교나 기업체 등 그 어느 조직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미암일기』에 이와 연관된 유사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민구(閔龜)와 정강옥(鄭岡玉)이 왔다. 민구는 나와 황원(黃原)의 화산(花山)에 제방을 쌓은 후 논을 만들 것을 의논했다.… 둘째 누님의 아들인 조카 오언상(吳彦祥)이 와서 말하기를 ‘향리(鄕吏) 차억세(車億世)가 입안(立案)을 하기를 독동음(禿冬音)에 있는 묵은 논에 둑을 막고 물을 대면 4·5석(石)지기의 논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이유수(李惟秀: 큰 누님의 아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아침 일찍 밥을 먹은 뒤 의관을 갖추고 백련동(白蓮洞)으로 가서 사돈인 생원(生員) 윤항(尹 )을 문병했다. 어느 정도 일어나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소생할 가망이 보여 반갑다. 단술을 내놓으며 대접을 해 주었다.… 또 말하기를 ‘전일(前日)에 제가 영공(令公)에게 편지를 하여 바닷가의 둑을 막아 농장을 만들자며 진도(珍島) 한 군(郡)의 농민들을 내세워 만들자고 하자, 영공께서 농민들에게 근로를 끼치는 폐단이 있다고 반대하셨는데, 이는 영공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저보다 훨씬 깊고 위이신지라 미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원래 경제적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던 유희춘은 21년간의 귀양살이로 인해 경제 사정이 유배 전보다 훨씬 못하였다. 비록 해배 복직되었지만, 빈궁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녹봉(월급)만으로는 경제적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가능한 한도 내에서 재산 증식에 신경을 쓴 것 같다. 그리하여 그는 매득(買得: 싼 값으로 사는 것), 진전(陳田: 묵정밥. 오래 버려 두어 거친 밭)의 개간, 관둔전(官屯田: 지방 관청에 딸렸던 논밭)의 매점(買占) 등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농지 소유 규모를 확장시켜 나갔다. 위의 내용도 그 일부로 친구와 조카, 사돈과 상의하여 이들과 함께 개간이나 간척사업 등을 통해 농지를 소유하려고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희춘 자신이 조정의 관리로서 농민들을 동원하자는 사돈 윤항의 제안에 대하여 백성들에게 수고를 끼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반대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유희춘은 소유 농지 확장을 통해 재산을 증식코자 하였지만, 개인의 사적인 일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수고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여기서 백성들에게 수고를 끼치게 하지 않으려는 유희춘의 관리·공인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좌전(左傳)』과 『역경(易經)』을 보면, ‘백성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임금은 먼저 백성들을 잘 살 수 있게 하고 나서 신(神)에게 정성을 드려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백성에게 먼저 베풀면, 백성은 수고로움을 잊고 일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위정자가 가장 중시해야 할 일은 백성들의 생활 안정이며,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면, 백성들은 수고로움을 잊고 앞장서서 일한다는 뜻이다. 위정자나 고위 공무원들이 이러한 자세로 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이 때, 국민들을 위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해를 끼치는 위정자나 고위 공무원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