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나온 내일이 없는 도시 빈민 노동자들
외지인에게 ‘서울은 마스카라 번진 창부의 얼굴’과 같다

서울 바깥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서울시민과 시골사람이라는
단순한 변별의식이 아니라
서울에 대한 반감과 콤플렉스가
저절로 내밀화되었다

서울 콤플렉스：80년대 서울을 보는 시인의 시각

80년대 서울은 중앙이었다. 중앙인 서울의 권역 바깥에는 변두리가 있었다. 이러한 중앙-변두리의 분할구도는 70년대 이후 무리하게 진행된 산업화정책의 산물이었다. 즉 수출위주의 경제정책과 저임금-저곡가 정책이 불러온 농어촌 경제의 붕괴와 도시화 집중화에 의해서 이런 차별적인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신경림은 당대의 농어촌 상황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멀리 뻗어나간 갯벌에서/어부 둘이 걸어오고 있다/부서진 배 뒤로 저녁놀이 발갛다/갈대밭 위로 까마귀가 난다//오늘도 고향을 떠나는 집이 다섯/서류를 만들면서/늙은 대서사는 서글프다”(신경림 <폐항> 부분) 산업화의 도정에서 소외된 채 붕괴되고 있는 어촌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시다.
늙은 대서사의 서글픔 속에는 시적 화자의 시선이 중첩되어 있다. 그의 또 다른 시에는 서울로 올라온 농어민의 괴로운 삶이 그려지고 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목을 잡고/발목을 잡고/어깨에 매달려 등에 업혀/일년이라 열두 달/편한 날이 없다 나무라는 구나/우리들이/구지레한 산동네 떠나지 못함은/갯마을에서 외진 산골마을에서/앞서거니 뒤서거니 화물차에 실려온/이 산동네에 떠나지 못함은……”(신경림 <횃불> 부분)
고향을 떠나온 이농민들은 서울시민이 되었지만 경제적인 빈곤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도시의 변두리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도시빈민들은 뿌리가 없는 존재들이자 노동현장을 압박하는 산업예비군들이었다. 이들의 삶은 “길이 시작하자 여행이 끝났다”다는 말과 같이 내일이 없는 삶이었다. 그들이 서울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분할은 이분화 된 이념적 구도를 만들었다는데 더욱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울 바깥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시민과 시골사람이라는 단순한 변별의식이 아니라 서울에 대한 반감과 콤플렉스가 저절로 내밀화되었다. 이러한 반감과 콤플렉스는 장정일의 시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1.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소유하고 있지 못하면, 금새 외로와지는 서울……<중략>……/5.고향에서 밀려난 서울 사람들이 다시/서울에서 떨려나지 않으려 안간힘 한다.//6.흠집 난 레코드처럼 내 마음은 대구 생각으로 튄다//7. 코카콜라가 길을 가르켜 주는 서울-서울 시내의 버스노선 안내기는 모두 코카콜라 캄파니 제공이다……<중략>…….12.낯선 여자와 잔다. 서울이 아니었다면 참을 수 있었을 것을..../13.비에 젖은 서울의 쌍판은 마스카라 번진 창부 얼굴 같구나……”(<서울에서 보낸 3주일> 부분)
서울은 욕망의 도시이자 코카콜라로 비유되는 매판자본의 도시였다. 서울이란 대도시는 결국 허위의식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시적 화자의 시각은 서울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통찰의 토대는 바로 변두리 의식이었다. 대구생각이 서울이 “마스카라 번진 창부의 얼굴 같다”고 인식할 수 있는 혜안을 만들어 준 것이다.
장정일은 중앙-변두리의 차별적 구도에 대한 반감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중앙>에서 편지가 왔다/그동안 예의주시 했노라고/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노라고/당신의 유형이 해제되었노라고/거기서 저지른 실수는 대수로운 게 아니었노라고/<중앙>으로 너를 불러 오리겠다고//흥, 그 잘난 <중앙>!/나는 답장하지 않는다//<중앙>에서 다시 편지가 왔다/변방에서의 설움을 벌써 잊었느냐고/<중앙>에 와서 숨은 능력을 뽐낼 생각이 없느냐고/이 기회를 놓치면 특혜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고/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흥. 그 경멸할 만한 <중앙>!/나는 답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중앙>에서 고위층이 왔다/<중앙>의 정체는 얼마나 왜소한 것인가/그의 팔다리는 가늘고/안색은 창백하다 또/<중앙>으로 모시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는 은근하고 부드럽다//흥, 내가 그 중앙이요/묵묵히 견뎌온 내 침묵으로 대답했다.(<중앙과 나>전문) 이 시 텍스트에서는 서울에 대한 반감과 탈 서울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반감과 변두리의식은 하나의 수사일 뿐이었다. 서울은 정치·경제·교육·문화의 중심으로 더욱 공고화되고 있었다. 80년 초에 시작된 컬러 TV 방송은 중앙인 서울의 이미지가 전국을 압박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대구·부산·광주·대전 등 서울 바깥지역은 서울 따라가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의 전국화라는 이야기가 사실인 듯이 보였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80년대 서울은 중앙이었다. 그리고 중앙인 서울의 권역 바깥에는 변두리가 있었다.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