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함 속에 깨끗함을 지키며 살아온 선량한 청계천 사람들
복구된 청계천에 소박한 문화의 씨를 다시 심자


진정한 청계천의 복원은 갑갑한 콘크리트를 걷어 내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기로 복작거리던
예전의 활기를 얼만큼 되찾느냐에 달려있다

개통을 이틀 앞두고 청계천에 나가보니 다리 마다 벌써부터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이 꽤있었다. 호기심과 기대에 찬 얼굴을 한 사람들은 제 각기 흐르는 청계천을 보며 감회를 나누고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카메라에 달라진 청계천의 모습 담기도 한다. 바쁘게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몸을 기울여 다리 밑에 흐르는 아주 맑은 새물을 저마다 눈으로 확인하려고 했다. 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문을 개방했는지 아이들이 녹색 바탕의 청계천에 발을 담그는 모습도 보인다. 아마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뛰어 다니고 있는 곳의 예전 모습을 알지 못할 것이다. 갑갑하고 너저분해 박경리 선생이‘서울 한 복판의 스레기통’으로까지 표현하던 옛날의 청계천은 의도된대로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아직 심겨진 돌과 흙이 썩 자연스러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청계천은 아주 달라져있었다.
그리고 청계천은 간간히 녹색 물결 사이로 작은 피라미가 다니는 정말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반듯하게 포장된 산책로를 둘러싼 질서정연한 자연산 벽돌, 모든 것이 정돈되고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콘크리트로 덮여 거대한 차량들에 의해 몸살을 앓던‘슬픈 과거는 모두 잊고’다시 태어난다던 약속이 확실히 지켜졌다고 각인 시키듯 모든 것이 정연하다. 이 곳에 뿌리박힌 풀한 포기, 뒹구는 자갈 한 톨도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서울의 어느 곳보다 허름한 상가 건물들의 개천(開川)이 되어 흐르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세련된 조경으로 꾸며진 청계천은 물위의 낡아빠진 상가건물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로는 곧 이 근처가 순차적으로 재개발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리에 기대 구경을 하는 한 아주머니께 청계천의 달라진 모습이 어떠한지 물었다.

“깨끗하고 좋아. 아 누가 이렇게 정말 다시 맑은 물이 흐를 줄 알았나. 좋긴 좋아 그런데, 노점상들이 걱정이지”
“청계천을 개방하면 그분들 다시 돌아오는 거예요?”
아주머니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을 꺼냈다.
“아마 못 올 걸. 저렇게 깔끔하게 꾸며 놓고 누가 내려 보내 주겠어. 길도 좁아 졌는데. 좋아. 물도 좋고 풀도 좋은데 그네들이 걱정이지”
그럼, 지금 그분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물어 발길을 돌려 동대문을 향했다. 노점들은 장사를 그만두거나 거의 동대문운동장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해주셨다. 거리를 둘러싸고 있던 그 많던 노점상들은 동대문운동장안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운동장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쾨쾨한 냄새가 속을 거북하게했다. 주황색 전구가 달린 골목 같은 통로를 빠져나온 시장은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아주 좁은 몇 줄기의 길을 빼고 운동장 한쪽에 빼곡하게 물건을 펼쳐 놓은 상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 소란하지 않은 시장은 오히려 갑갑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름의 질서로 정리된 낡은 회중시계, 도자기, LP판, 뽕짝이 흘러나오는 휴대용 라디오 딱히 집어 들 것은 없지만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지만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말도 안 되게 싸게 파는 물건들, 가지 수도 많고 물건 수도 많아 길거리에 하나 가득 펼치고도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눈이 가는 대로 손이 이끄는 데로 시장 어디든 앉아 구경할 수 있도록 허리를 굽히고 웅크릴 자리를 내어 준다. 그렇지만 시장은 외로운 상인들의 쾡 한 눈과 쓸쓸한 안타까움이 덕지덕지 떨어져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시장의 통로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보다는 제 물건을 만져대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비싸봐야 만원 한 장짜리 물건이지만 그들에겐 귀한 것이기에 먼지 쌓일 세라 닦고 또 닦아댄다.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침침한 운동장 안은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장 큰 도시 서울 어디에서, 어느 유명 백화점에서도 이곳의 물건을 살 수 없듯이 이제는 살아있는 추억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장소가 바로 이곳 벼룩시장이다.

하지만 새물을 맞이한 폼 나는 청계천도, 예전 벼룩시장의 낡은 모습만이 남아 현실과 유리된 동대문운동장안의 모습도, 서로의 반쪽을 잃어 모자람을 느끼게 했다. 아름답게 꾸며진 청계천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면 결코 문화가 깃들 수 없어 서울 한 복판을 가르는 거대한 장식물에 그칠 수밖에는 없다. 서울 중에서도 가장 분주한 사람들, 장사치들이 판을 이루는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양 옆에 도로를 낀 매연이 내려오는 청계천으로 산책을 나올까. 결국 그 장사치들의 문화가 깃들 수 있는 기회를 여전히 박탈한 다면 아무리 푸른 물이 흐르는 청계천이라 할지라도 앞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자아낼 길이 없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가는 동대문풍물벼룩시장도 고사한 과거를 박제해 놓은 것 같은 생기를 잃은 모습으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흉흉한 곳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진정한 청계천의 복원은 갑갑한 콘크리트를 걷어 내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기로 복작거리던 예전의 활기를 얼만큼 되찾느냐에 달려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불 수 있듯이 강을 끼고 조성된 도시의 벼룩시장은 관광의 명소이자 낭만이다. 또한 선진된 거리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공공질서의식과 자신들의 일의 문화적 가치를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정성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에는 서민들의 하수도로 빨래터가 되어주었으며 일제시대 때 붙여진 청계천이라는 이름과는 대조적인 낡은 판잣집이 즐비했다. 그렇게 오염된 청계천은 박정희 정권에 덮여져 도로가 들어선다. 도로변에 노점들이 늘어서 벼룩시장을 이루었고 복원공사 2년만에 되찾은 맑은 물이다. 또한 청계천은 여전히 서울의 역사와 함께 흐르고 있다. 이제 청계천은 문화와 함께 흐르고 싶다. 어울리지 않는 장식물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흐르는 진정 새로운 물과 푸르름을 맞이한 생기 넘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 복구된 청계천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잘 정돈된 산책로와 풀밭이 조성되어 있다.

▲ 6·25 시절 청계천엔 허름한 판잣집이 즐비했고 이윽고 물이 병들기 시작했다.
<조영리 기자>  diadiadl18@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