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위 석 / 시인·시사 평론가

외동딸을 팔아 산 심봉사의 대명천지

심청전의 클라이맥스는 임당수에 제물로 던져졌다가 다시 살아나서 황후가 된 딸 심청을 한 번이라도 보려고 기를 쓴 바람에 그만 심봉사의 눈이 영영 뜨이게 되는 장면이다. 한 소녀의 지극한 효성에서 우러나온 희생이 자기 자신은 죽음으로부터, 부친은 암흑으로부터 부활시킨다.
이 부활 부분을 빼면 심청전은 속임수와 무지와 호언장담이 엮어 내는 하나의 처절한 비극만 남는다. 심청전이 실화였다면 제 눈 뜨겠다고 딸을 죽음으로 팔아넘긴 다음 그 아비는 눈을 뜨기는커녕 죄책감으로 번민하고 방황하다가 삶을 끝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심봉사는 운명의 날 아침에야 그 간의 곡절과 함께 하직을 고하는 딸을 잡고 통곡하며 말했다. ‘내 눈을 팔아 너를 사지, 너를 팔아 내 눈을 산단 말이냐?’ 공양미 삼백 석 시주를 약속하지만 않았더라면 그의 현재이자 미래인 외동딸을 영이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남한은 언제라도 심 봉사의 이 절망적 절규가 터져 나올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남한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보물인 자유를 팔아서라도 통일만 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겠다고 정신을 잃은 채 돌진하고 있다.
아마 이 통일은 남북의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선포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남한의 현 좌파 정권은 김정일 체제와 손잡고 ‘남북통일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다. 남북은 형식상 각각 자치 정부를 가질 것이다. 통일을 위하여 잠정적이라는 명목을 달고, 그러나 실제로는 영구히 남한에서 자유선거, 의회, 언론자유가 정지될 것이다.
남북통일위원회는 통일된 민족 공조를 위하여 외교와 국방을 관활하게 될 것이다. 남한에 주둔하는 미군은 1975년 4월 베트남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겨우 병사들의 목숨을 보장 받아 한반도로부터 철수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북한의 노동당과 인민군이 남북통일위원회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 체제는 처음에는 경제에 있어서만은 적어도 남한에서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자초지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구에 김정일 체제는 남한 식의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를 자기네 배 속에 넣고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사진으로 보도된 뱀이 자신보다 더 큰 악어를 잡아먹었다가 배가 터져 죽은 ‘사고’를 예감하게 될 것이다.
위기를 느낀 김정일 체제는 통일된 한국 경제를 지금 북한의 그것처럼 통제된 계획 경제로 서둘러 환원시킬 것이다. 생산은 급격하게 줄고 인민의 생활은 기아와 암흑의 임당수에 빠져들 것이다. 판소리 심청전의 ‘범피중류’ 한 대목이 ‘풍덩’하는 한 소리로 끝나는 것처럼.
매우 늦었으나 더 늦는 것 보다는 낫다. 자유를 팔아서 사는 통일도 과연 ‘우리의 소원’인가 하는 것을 남한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자유를 포기하면 통일을 위하여 남한 쪽이 당장 부담해야 할 다른 통일 비용은 없다. 전쟁도 피할 수 있다. 그 대신 그 통일은 노예와 기아의 통일이 되고 만다.
반대로 북한을 자유 속으로 불러들이는 통일을 이루게 되면 통일 이후 얼마만한 비용이 들까. 북한 지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이 현재 남한의 수준에 이를 수 있기까지 5~10년 동안에 걸쳐 5천억~7천억 달러가 투자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액수는 대체로 남한의 한 해 국민총생산액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투자는 어디까지나 투자지 비용이 아니다.
통일은 ‘꿈에도 소원’일 수 있고 ‘이 목숨 바쳐서 통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를 팔아 사는 통일은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틀림없이 이 겨레를 죽이게 될 통일이다.
심봉사에게 눈 뜨는 일이 그랬던 것만큼 간절한 소원에는 대체로 천지신명의 도움에 앞서 악독함과 어리석음이 혼합된 속이고 속는 일이 먼저 생긴다. 공양미 삼백석 시주를 약속 받아내는 스님, 그 공양미 값을 내겠으니 심청을 임당수 제수로 사겠다는 뱃사람들, 그 누구보다도 심봉사 본인이 이런 악독함과 어리석음의 주인공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한 인민은 자유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통일이 늦어지면 기다려야 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통일을 포기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칼날처럼 시퍼렇게 세우고 있어야 한다.

강위석은 1937년 생, 한국경제신문, 문화일보, 중앙일보에서 사설과 칼럼을 썼다. 월간 에머지의 편집인과 발행인을 지냈다.
강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