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56

시로 주고 받는 부부 사랑

“조선시대 평민들은
자신의 옷섶을 잘라
상대방에게 줌으로써
혼인관계를 끝내곤 했다”

“근엄한 조선 사대부들도
아내에 대한 사랑 기록했으니,
생전에 아껴주고
사랑하는 마음 가져야”

혼인은 인륜 도덕의 시원이요, 만례(萬禮)의 근원으로 신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혼인을 하면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면서 해로(偕老)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부가 살다 보면 부득이 하게 헤어지는 경우도 간혹 있는 법. 마땅히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하는 부부들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요즈음 우리나라 이혼율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높아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황혼 이혼도 심심치 않다 하니 어쩌다 우리나라 마저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지……. 우리 모두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혼 얘기가 나온 김에 사족을 좀 달까 한다. ‘옷섶 잘라 갈라선 부부’라는 옛 말이 있다. 이혼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평민들 사이에 주로 행해졌는데, 자신의 옷섶을 잘라 상대방에게 줌으로써 혼인관계를 끝내는 것이다. 잘라낸 옷섶을 ‘수세’라고 했는데, ‘수세 잘라준다’, ‘수세 베어낸다’라는 말은 민간에서 이혼을 뜻하는 말이었다. 원래는 양반들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써주는 사사로운 이혼 문서를 ‘휴서(休書)’라고 불렀는데, 이 말이 와전되면서 평민들 사이에서 ‘수세’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옷섶으로 ‘휴서’를 대신하는 것도 나름대로 그럴듯한 의미가 있다. 본래 옷의 겉섶과 안섶은 옷을 여밀 때 서로 겹쳐져 옷 앞부분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부분이다. 헌데 겹쳐져야 할 겉섶과 앞섶 중에 한 쪽을 잘라냄으로써 마치 서로 붙어 있어야 할 부부가 갈라서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얼핏보면 흥미로운 것 같지만, 당사자로써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는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부부가 서로 위하고 사랑하며 살다가 한날 한시에 죽는다면 이처럼 행복한 부부도 없을 것이다. 부부 사랑 참으로 좋은 말이다. 『미암일기』에 보면 유희춘·송덕봉(宋德峯) 부부의 시로 주고 받는 사랑 얘기가 실려있다. 이를 소개한다.

“① 눈 내리고 바람 더욱 차가우니
냉방에 앉아 있는 당신이 절로 생각나오
이 술이 비록 하품(下品)이기는 하지만
당신의 언속을 덥히기엔 족할 것이오

②국화잎에 비록 눈발 날리오나
은대(銀臺)에 따뜻한 방이 있겠지요
차가운 방에서 따뜻한 술을 받아
창자를 채우니 그 고마움 그지없어라

③높이는 여악(廬嶽) 3천길과 같고
맑기는 소상강(瀟湘江) 8·9월 가을 같네
다시 양춘(陽春)의 생물(生物)하는 뜻이 있어야
바야흐로 군자의 강유(剛柔)가 덕을 이룬다네

④당신의 시 자랑 겸양이 없는데
맑기가 어떻게 상수(湘水)의 가을 같습니까
젊은 시절 색욕을 없애버리고
사물에 무심하면 과연 짝이 없을 것입니다”

①의 시는 유희춘이 모주(母酒) 한 동이를 집에 보내며 지은 시이고, ②의 시는 송덕봉이 이에 화답한 시다. 눈 내리고 차가운 늦가을, 6일 동안이나 집에 가지 못했던 유희춘은 집에 있는 부인에게 모주 한 동이와 시 1수를 지어 보냈다. 유희춘은 객지인 한양에 와서 자신을 뒷바라지하는 부인에게 할 말이 없었다. 한양에 집 한 채 장만 못하고 빌려사는 신세, 더구나 며칠동안 부인 혼자 있었으니 방은 더욱 추울 수 밖에. 그래서 유희춘은 자신 때문에 평생 고생만하는 아내에게 미안함과 함께 사랑의 뜻이 담긴 시 한 수를 지어 보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송덕봉은 차가운 날씨에 은대(승정원)에서 입직(入直: 숙직)하고 있는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는 한편, 술을 보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시로써 표현하였다. 시작(詩作)을 통해 부부애가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③의 시는 유희춘, ④의 시는 송덕봉이 지은 것이다. 유희춘이 송덕봉에게 자신을 과시하자, 이를 송덕봉이 시로써 희롱하였다. 유희춘의 과시와 은근히 허를 찌르고 있는 송덕봉, 여기서 유희춘·송덕봉 부부의 자별한 사이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부부가 실생활에서 있었던 일을 시로써 수창하면서 부부의 정도 더욱 돈독해졌다.
『빈 방에 달빛 들면』이라는 책을 보면, 조선조 사대부들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진솔하게 기록한 글들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일부만 간단히 소개한다. ‘얼굴은 까맣게 타들어가 옛날의 꽃다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는데도 내가 어리석어 근심 걱정도 하지 않고, 마구 화를 내고 욕을 하며 마치 원수나 해충 보듯 왜 안죽나 하기 까지 했소…’라는 내용이 있다. 남존여비가 철저했던 조선시대에 근엄하기만 한 사대부들도 먼저 간(죽은) 아내가 그리워 한숨짓고 생전에 못해준 바를 눈물로 후회하고 있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다. 아무리 자식들이 잘 한다고 해도 부부만 못한 법이다. 특히 늙으면 더욱 그렇다. 살아있을 때 서로 원없이 아껴주고 사랑하자.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