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49
포르노그라피와 성문화(하)

평등한 섹슈얼리티가 행복한 성 만든다

남성의 시선에 의해 재구성되고 대상화된 여성의 몸, 왜곡된 섹슈얼리티, 여성에 대한 이중규범들은 하위문화로 지칭되는 하드-코어 포르노에서부터 인기를 독점하는 게임 캐릭터와 고급한 광고카피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화 전반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 샤론스톤의 각선미와 함께 ‘강한 것으로 넣어 달라’는 모 주유소의 광고 카피가 포르노적 이미지의 상징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희안하게도 자동차와 관련된 광고나 행사에는 늘씬한 여성들이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자동차에 기댄 레이싱 걸 중에 키가 작거나 통통한 사람을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야구 경기장에는 치어리더들이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흥을 돋운다. 연예계와 인터넷-모바일 서비스에서 불었던 누드 열풍은 지금도 대표적인 스타시스템으로 번창하고 있다. 과거에는 천박하다는 의미의 비아냥거림이었던 ‘섹시함’이 대중매체의 대표적인 여성성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노출=막대한 수익’이라는 공식 외에 어떠한 의미를 남겼는지 의문스럽다. 페미니스트들의 안티운동으로 현재는 공중파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우리는 ‘미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여성의 몸매와 신체 사이즈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감상하기도 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점점 더‘바비 인형’처럼 규정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성을 누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으로부터의 억압, 누구에 대한 해방인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심지어는 예쁜 여성을 향해 ‘몸매가 착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현실에까지 와 있다. (바비인형같은 몸매를 지니지 않은 여성들, 그녀들은 과연 나쁜사람인가?)
포르노그라피와 이미지에 대한 비판을 하다보면, 섹스혐오증이거나 도덕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게 된다. 그럴 때마다 좀처럼 다양하게 논의되지 못하는 성 담론이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90년대 이후 전통적 성윤리에 대한 회의와 섹스산업의 급격한 성장은 ‘성적자유’를 성해방, 인간해방의 도식으로 단순화시켰다. 예술/외설 논쟁이 불붙듯 일어났고, 에로영화는 전성기를 맞았으며 각종 문화산업에서의 ‘벗기기 경쟁’은 검열에 대한 저항을 빙자(?)해서 번져나갔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포르노는 불법 복제를 벗어나, 대단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대중과 접촉하였다. 성을 금기시했던 보수적인 태도에서 벗어날 때, 모두에게 성 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들은 포르노를 비롯한 노골적인 성문화를 대하는 주체를 한 묶음으로 간주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혹은 남성들이 어떠한 성적 주체인지, 가부장제 하에서 구성되는 성적 욕망과 실천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고루한 도덕주의적 태도와 금기에서, 이성애주의와 가부장적 구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억압으로부터 성은 해방되어야 하고 이것은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토대를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난 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찬/반 포르노 논쟁은 이전부터 부딪혀 왔던 성 담론의 불편한 부분들을 표면화 했다. 찬 포르노 진영에서는 여성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제작하고 소비하는 운동을 확산시켰으며, 반 포르노 진영 역시 안티 운동을 지속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한국에서도 지난 6월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주관했던 <포르노 포르나>축제에서 남성형 어미인 porn‘o’를 여성형 어미 porn‘a’로 바꾸어 사용하면서 안티 성폭력과 함께 평등한 섹슈얼리티를 모색했다. 포르노 자체에 대한 검열이나 금지를 넘어서 성문화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큰 의미를 지닌다. 여성·남성의 구분 자체에 아무런 위계도 존재하지 않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가 된다면, 그러한 문화 위에서의 섹슈얼리티라면, 우리 모두 즐겁고 행복한 성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진주<국문·3> pearl2819@hanmail.net

▲ ‘섹시함’이 대중매체의 여성성으로 자리잡았다.
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