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규(토목·86졸) 동문의 LA통신

유태인의 설날

미국의 하루를 쉬게 하는 유태인의 힘

LA 인근 지역에서 LA 다운타운으로 자동차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운전시간으로 적지않은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나 지난 4일 아침은 무슨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 30마일(약 48Km)을 1시간 10분 정도 걸리던 프리웨이가 40분이 못돼서 도착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인 학부모 중에는 오늘이 무슨 날인데 학교를 쉴까하고 의아해한 사람들이 많았다. LA 통합교육구를 비롯해 남가주의 많은 교육구에서 공휴일로 정한 이날은 유태인의 설날이다. 3억 인구의 미국에서 600만 명이 채 못되는 유태인들이 미국사회에서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날이다.
태양과 함께 달의 주기를 기초로 한 종교력과 민력(民曆) 체계를 사용하는 유태력(Jewish calendar)으로 올해는 5766년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유태력은 하루를 일출부터 일몰까지, 1주일을 7일로, 1달을 29일 또는 30일로, 1년을 12달 11일로, 즉 353~355일로 계산한다. 달력을 태양의1년 주기와 맞추기 위해 19년 주기 가운데3,6,8,11,14,17,19번째 해에 13번째 달(30일)을 윤달로 넣는다. 그러므로 윤달이 낀 해는 1년이 383~385일이 된다. 오늘날의 유태력은 9세기께 널리 받아들여진 것으로, 창조를 3761년으로 잡는 성서 계산법에 토대를 둔 것이라고 한다. 1년이 시작되는 새해는 티슈리(Tishri：9~10월) 달에 시작하며 9월의 초하루는‘로시 하샤나’라는 축일로 불리는 설날이다. 유태교에서는 이날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기념하는 날이다. 10일간의 속죄일(티슈리월 1~2일의 로시 하샤나에서 시작하여 티슈리월 10일의 욤키푸르[YomKippur：속죄일]에 끝남)은 전인류에 대한 심판의 날들이다. 로시 하샤나에는 엄격한 노동 금지와 그외 규율들을 부과한다. 욤키푸르는 1년 중 가장 엄숙하고 거룩한 날이다. 이 날은 하루종일 기도와 금식(禁食)으로 보내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과 화해한다.
지난 4일 LA 시는 휴무일이나 다름없었다. LA 시의회는 공휴일이 아닌 평일임에도 휴회를 선포했다. 경찰위원회, 도시개발위원회 등 이날 공식 모임이 예정됐던 시정부의여러 기구들도 모두 일정을 취소했다. 이날 취소된 시정부 모임은 전부 7개이다. 유태인의 가장큰 명절인 ‘로시 하샤나’(Rosh Hashana) 를 기념하고 유태인의 풍속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는 정치적 제스처로 보인다. 각종 공식 모임은 취소되었지만, 시장과 시의원 등 정치인들은 여러곳에서 열리는 ‘로시 하샤나’기념행사에 참석해 유태 커뮤니티와의 끈끈한 유대를 보였다.
LA 정치인 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유태 커뮤니티의 결속력 있는 투표 참여와 선거자금 동원력 때문 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LA 등록 유권자 중 유태계의 비율은 20% 가 채 되지 않지만, 매번 선거때마다 전체 투표자 중 유태계의 비율은 40% 가까운 높은 참여를 보여준다. 또 유태계의 지지를 얻으면 선거자금 100만 달러 정도는 손쉽게 모아준다는 것은 이 지역 정치인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유태인이라는 말이 있는데 LA를 움직 이는 것 역시 유태인”이라고 말한다.
한인 커뮤니티의 가장 큰 행사로 추석을 앞뒤로 둔 주말에 열리는 ‘한국의 날’ 축제때, LA 시장을 비롯한 시의원 등 정치인들은 코리안 퍼레이드에 잠깐 참석하는 정도인 그들의 자세는 유태인 커뮤니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올 추석은 그나마 일요일이었기에 망정이지, 평일인 날에는 그 전날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새벽부터 비교적 가까운 곳에 사는 가족들만 움직여 서둘러 차례를 지내자마자 출근길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이럴 때마다 생각을 해 본다. 우리 명절인 설날과 추석엔 학교도 좀 쉬고, 회사도 휴무를 하고, 한인들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도 쉬면서 한가롭게 명절을 보낼 수는 없을까.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석이나 설날에 차례를 지내는 한인은 20%를 넘지 않는 것으로 보고있다. 쉽지않은 타국에서의 이민생활 이지만, 그만큼 정신적,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고 보면 된다.

▲ LA서울국제공원에서 열린 한국의 날 축제 장터를 찾은 비아라이고사 LA시장이 한국 배를 먹어보며 익살스런 표정을 보이고 있다.
진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