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풍수지리(風水地理)에 관심이 많구나

“좋은 자리에 들어가려면
생전에 덕 쌓아야”

“유희춘이 풍수지리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조상숭배와
발복을 통해 후손들의
영세복록을 염원했기 때문”

한때 육관대사·최창조씨 등 풍수지리가들이 쓴 풍수지리 관련 책들이 불티나게 팔렸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이런 책들이 적지 않게 팔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에 가보면 풍수지리 관련 서적이 꽂혀있는 서가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어디 풍수지리 책 뿐인가? 사주·관상·작명 등과 관련된 책들이 꽂혀있는 서가에도 사람들이 붐빈다. 난세이거나 세상이 혼탁하거나 어수선할수록 사람들은 이런 책들을 더 찾기 마련이다. 특히 풍수지리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큰 관심거리이다. 그것은 명당, 이른바 좋은 묘자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명당을 선호하는 것은 효에서 비롯된 조상숭배와 발복(發福)을 통한 부귀·복록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자신과 자손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부유층 사람들은 명당자리를 얻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거금을 주고 명당자리를 구할 뿐 아니라, 이런 자리를 잡아준 지관(地官)들에게도 많은 돈을 주고 사례를 한다. 그러다 보니 명당터를 구하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의 경우, 풍수지리적으로 괜찮은 땅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구입하기 일쑤이다. 그렇지 않아도 묘지 때문에 문제인데……. 이 뿐만이 아니다. 집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예부터 자기가 들어갈 묘자리는 정해져 있다고 하였다.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자리에 들어가려면 생전에 덕을 많이 쌓아야 한다. 그리고 묘자리를 잡아준 댓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거나 받는 지관은 지관으로서 자격이 없다. 지관이 묘자리를 잡아준 댓가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요구하거나 받았다면, 그 지관은 사이비이거나 사기꾼과 다름이 없다. 실제로 이처럼 거액의 돈을 받은 지관들이 있기 때문에 하는 얘기이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당히 사례금을 받으면 된다. 천기를 함부로 누설하는 것도 죄요 게다가 행여 묘자리를 잘못 쓰면 그 집안과 자손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는데 장사꾼도 아니고 비록 풍수지리를 업(業)으로 할지라도 이래서는 안된다. 풍수지리는 도(道)를 닦는 자세로 행해야 한다. 필자도 풍수지리를 아는 관계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음택(陰宅: 묘터)이나 양택(陽宅: 집터)을 잡아주고 있지만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태반은 욕심이 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사주나 작명까지 요청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필자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인간관계 때문에 활인공덕(活人功德)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돈을 받지 않고 음택이나 양택을 잡아주고 있지만, 때론 내가 어쩌다 이런 공부를 했는지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선비들 중에는 풍수지리를 아는 사람들이 흔했다. 『미암일기』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장인의 제수는 담양에서 준비해 준 것이다. 이강매(李强邁)가 지리(地理)를 보더니 ‘간산(艮山)으로서 별도로 묘의 뒤에 시위(侍衛)를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 옛 운점사(雲岾寺)의 중 해운(海雲)이 나의 덕으로 솥 등의 물건들을 찾았다고 와서 사례를 하였다. 또 절을 지을만한 땅을 청하므로 나는 ‘덕기(德奇)의 십왕현(十王峴) 근처에서 잡아보라’고 했더니, 해운이 대답하기를 ‘그 곳은 본래 옛 터가 있었으니 삼가 명하신대로 하겠습니다’ 하였다. … 중 정안(靜安)을 시켜 서문 밖 새터에 패철을 놔보게 했더니 ‘간좌(艮坐) 곤향(坤向)에 신파(辛破)로 가장 길지(吉地)입니다’라고 하였다. … 꿈에 해남의 선영 옆에 갔더니 물이 콸콸 흐르고 있고 옆에 어떤 사람이 있어 하는 말이 ‘이 묘소가 본래 물이 없었기 때문에 자손이 빈궁했는데 이제 물이 있으니 이는 형통하고 성대해질 징조요’ 했다.”
풍수지리는 직접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의 내용들을 보면, 해석에 있어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예컨대 간좌 곤향에 신파를 가장 길지라고 한 것이라든지, 묘 옆에 물이 있어 형통하고 성대해진다는 것은 과장으로 보여진다. 내용으로 보아 좌향(坐向)과 파법(破法)만을 가지고 논한 것으로 보인다. 또 물이 흐르는 경우도 수법(水法)이나 파법 등에 맞아야 한다.
아무튼 유희춘은 풍수설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이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유희춘이 풍수지리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조상숭배와 발복을 통해 후손들의 영세복록(永世福祿)을 염원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즈음 정부에서도 화장(火葬)이나 납골당을 권장하고 있다. 풍수지리학에서도 화장하면 무해무덕하다고 했다. 더구나 요즘처럼 부모님 봉양을 소홀히 여기는 세상에서 죽은 뒤에 자손들이 잘 모실 수 있으리라 보는가? 아마 갈수록 더 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시신을 해부용으로 병원에 기증하거나, 아니면 화장을 해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망자(亡者)와 인연이 있는 곳에 유골을 뿌리게 하는 것이 어떨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법, 미련을 갖지 말자.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