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포르노그라피와 성문화(상)

남성 중심적인 성문화 간파해야

에로스는 우리에게 사랑의 대명사로 알려진 성애(性愛)와 아름다움의 신이다. 흔히 에로틱, 에로스적 욕망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에로스는 단순한 성애를 넘어서 일종의 에너지를 포함한다. 에로스는 죽음을 의미하는 타나토스의 반대로 쓰이며, 삶에의 의지를 총괄하고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은 성애에 대한 욕망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미지근하고 지루한 학창시절의 성교육을 제껴두고, 우리가 처음 섹스를 접했던 시점을 되돌려 보자. 한참 사춘기가 시작되고 금기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 들끓던 그때. 흔히 말하는 포르노그라피는 어디에나 있었다. 아침마다 주차장에 뿌려지는 성인전용업소의 전단지와 신문 가판대에 걸려 있는 성인잡지와 친구들 사이에서 나돌던 비디오까지. 포르노그라피에 관한 소통은 은밀하고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예술/외설 논쟁과 표현의 자유 논쟁이 활발히 진행된 90년대를 지나고, 인터넷 매체의 급속한 발달을 거치면서 우리는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성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섹스에 관하여 말하기가 대담해지고 인식도 확장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좀 더 에로틱한 ‘쾌’를 교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답은, 명백히 그렇지 않다. 일상에서, 사회에서, 매체에서 마주치는 섹스는 대단히 남성 중심적이고 공격적이며 폭력적인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에게 주어지는 수동성·피동성을 넘어서서 끊임없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피학성 모두를 포함한다. 흔히 인터넷을 통해 하루에도 수십만 건이 유포되는 포르노그라피의 전형을 보자. 다수 남성에 의한 강간, 채찍질, 감금과 고문, 어린이에 대한 성적 학대, 정복자와 희생자의 위치를 상징하는 체위 등 계급이나 권위를 이용한 불평등한 설정이 난무한다. 포르노그라피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남근에 대한 갈망과 피학에 대한 욕구를 드러낸다. 남성의 성욕은 공격성과 적극성을 드러낼 때 더욱 선망의 대상이 되며, 여성의 성은 그러한 남성을 향한 욕망과 수동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폭력성과 공격성을 내포하는 섹스가 포르노그라피의 환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중심적인 성관념의 팽배는 곧 여성에 대한 비하와 억압으로 나타난다. 남성판타지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 여성의 이미지는 ‘섹시함’ 혹은 ‘천박함’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형용사로 대변된다. 포르노그라피에 나오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채찍을 휘두르고 남성을 고문하는)여성들조차 남성들의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다. 고문받는 남성이 아닌, 가학적인 여성의 이미지에 대상과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정복하는 남성과 희생당하는 여성의 성계급적 불평등은 여성의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 클로즈업 되면서 순식간에 무마된다. 포르노그라피에 등장하는 성적 판타지는 여성이 철저히 배제된, 오롯이 남성들만의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쯤되면 포르노그라피가 섹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불균형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포르노그라피’라는 말은 그리스어 ‘포르네(여자 포로, 옛말로 매춘부)’와 그래포스(묘사, 서술)를 합친 말이다. 포르노그라피의 의미는 성매매의 묘사는 물론 성노예화를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거창한 말에 그다지 놀랄 것은 없다. 포르노그라피가 대중문화와 일상속으로 침투하는 과정은 더욱 가관이기 때문이다. 잡지 표지와 텔레비전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욕과 고통, 굴욕적인 포즈로 남성을 유혹하는 광고카피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일반화시키는 게임매체에 이르기까지. 포르노그라피는 대중문화가 아니라고 짐짓 젠체하는 문화권위자들조차 할말이 없을 정도이다. 한참 엽기문화가 인터넷 저변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90년대 후반, 섹스와 살해장면을 혼합한 스너프 필름이 은밀하게 그러나 다수에게 거래되었다는 것은 새삼 충격적이지도 않다. 포르노그라피의 유해성과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성토하기에 앞서 그것에 내재하는 성권력과 산업자본주의의 거대한 야합, 일상의 폭력과 남성중심적인 성문화를 간파해야 한다. 섹스와 폭력을 분리하는 일에서부터, 성평등과 즐거운 에로티카에 이르는 전망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진주<국문·3> pearl2891@hanmail.net

▲ 사랑의 대명사로 알려진 성애와 아름다움의 신 에로스. 에로스는 단순한 성애를 넘어서 일종의 에너지를 포함한다.
이진주  pearl28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