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 66 - 한 준 상 / 연세대<교육과학대학 교육학> 교수

대학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배움의 정신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해 학자들은 크라크 커(Kerr)를 들어 설명하곤 한다. 그는 대학의 기능을 연구, 교수, 봉사라고 명쾌하게 정리했었다. 미국의 유명대학 총장을 역임했던 사람의 대학론이기에 대학의 이해를 위한 길잡이로 쓰였음직도 하다. 교수들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지식을 생산해내는 곳이며, 그렇게 생산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여력이 있으면 그것을 사회개선을 위해 활용해야 하는 지식의 발전소가 바로 대학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대학론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식은 바뀐다는 그의 지론대로, 대학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곳이겠기에 그의 대학론도 수정되어야만 했다.
모든 이들이 지식창출자
사실 그의 대학론에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강조한 연구,교수, 봉사의 대학론은 산업사회의 지식생산 원리를 중심으로 적용되는 논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의 기능을 가르치는 자 그리고 연구하는 자의 편에서 파악했는데, 그의 논리대로라면 학생들은 그저 지식의 소비자들이나 될 뿐이다. 이런 태도는 정보와 지식의 유통기간이 소수지식인에 의해 통제될 수 있었을 때에나 유효했다. 디지털중심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모두가 지식생산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인문 사회과학적이거나 이공계적인 그런 실험에서 창출되는 최신 정보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다 정보이며 지식에 속한다. 예체능계에서 산출되는 미학적인 정보로부터 의학, 일상적인 상식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몇 차례의 제대로 된 공정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사회적으로 인증받을 수 있는 쓰임새 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

대학에서 생산한 지식의 질에 대한 평가는 차후의 문제이다. 지식의 높고 낮음이나 그 쓰임새의 수준차이를 논하는 것은 지식생산이 이뤄진 그 다음에 행해도 늦지 않을 문제이다. 지식을 생성해놓는 일에 있어서 대학은 그 언제나 열린구조가 되어야 한다. 대학에 속한 사람은 학부생이든 박사이든 그 누구나 지식창출자들로 기능해야 한다. 대학은 교수만이 나 홀로 연구하는 곳도 아니다. 실험실 역시 박사만이 저 홀로 탐구하는 곳이 아니다. 모두가 연구하고, 서로서로 탐구하는 곳이다. 때때로 나 홀로 탐구하고, 때때로 더불어 탐구 곳이 대학이다. 교수든, 박사든, 학생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제대로 지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탐구하기 위해서 대학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배움의 정신이다.
대학의 정신은 배움
대학의 정신은 배움이다. 배움이 제대로 선후에야 연구와 가르치는 일, 그리고 봉사하는 일이 가능하다. 모두가 제대로 배우고, 모두가 서로 배워야 한다. 대학에서 배움이 제대로 서러면, 교수가 먼저 배우는 사람으로 서 있어야 한다. 배움에 게으르지 않는 일, 배움을 즐기는 일, 배움에 앞장서는 일들이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일이다. 배움은 지식생성, 지식발전을 위한 지식융합의 에너지와 같다. 마치 핵 폭탄의 위력을 드러내 놓는 핵분열의 그것처럼, 배움은 모든 지식생성과 지식창출의 에너지원이다.
핵폭탄은 우라늄을 원료로 삼아 만드는데, 핵 분열의 위력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 바로 에너지 질량 불변의 원리이다(E=mc2). 예를 들어, 우라늄 중에서도 분열을 잘 하는 우라늄에 고속중성자가 부딪치면 우라늄 속 양성자가 쪼개지며 전혀 다른 원자가 되면서 질량 손실이 생긴다. 우라늄의 질량이 10 이라면 쪼개진 원자들의 질량의 합은 9.9 정도로 감소된다. 이 때 생긴 질량 손실(말하자면 0.1)이 에너지 질량의 불변의 원리에 의해 에너지로 전환된다. 일단 우라늄이 쪼개지기만 하면 된다. 그런 쪼개진 곳에서 다시 중성자가 튕겨져 나오 식으로 또 다른 우라늄이 분열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분열해가면 나중엔 상당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것이 핵폭탄의 위력으로 드러난다. 이런 우라늄의 핵분열을 제대로 이용하면 인간의 복리를 위한 원자력 발전소가 되는 것이다.
배움이라는 것은 마치 우라늄이 쪼개지도록 그래서 그 곳에서 다시 핵분열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말하자면, 지식생성이 가능하고, 그것에서 또 다른 지식창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지식창출의 발전소의 핵심요소이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배움(Learning)은 그야말로 의미(Meaning) 만들기와 등가관계(E=ms2;Erudition=Meaning X Significance 2)에 있다”라고 정리된다. 이렇게 정리되는 배움의 등식은 아인슈타인이 정리한 에너지-질량 비례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지식생성과정에서 배움은 다양한 의미들 사이의 분열과 융합으로 더욱더 새롭게 생성된다. 서로 다른 의미와 의미들의 부딪힘현상을 통해 하나의 지식생성을 위한 에너지로 발현된다. 배움의 본성을 지닌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매일 같이 접하고 익히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지속적인 작업이 바로 배움인 것이기에, 대학은 배움을 위한 그 이상도 아니고, 반대로 그 이하일 수도 없다.
한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