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57 - 독서와 도서 구입에 열성이구나

글을 읽는 것은 반드시 많이 읽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읽어도 그 핵심을 모르면 책가게일 뿐이다

독서광 유희춘은 관직 생활의 바쁜 와중 뿐 아니라, 귀향·상경할 때마다 항상 서책을 갖고 다녔다


흔히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독서하는데 굳이 계절을 따질 필요는 없지만, 가을만큼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도 없다는 뜻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독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취미가 독서라고 하는데,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화다. 이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런데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취사선택을 잘해야 한다. 평소 책을 안 읽던 사람이 갑자기 독서를 하겠다고 하면서 양서(良書) 그것도 수준높고 어려운 교양도서류를 읽는다면, 아마 서너 장 읽고는 머리가 아프다고 읽던 책을 덮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중·고등학교 시절 입시 위주의 교육만 받고 독서법이나 책 읽는 습관을 제대로 배우거나 기르지 않은 사람들은 특히 그러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읽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가벼운 책부터 순차적으로 읽기 바란다. 그러다 보면 독서에 재미를 붙일 것이다. 그리고 독서를 할 때에는 천천히 읽고, 생각하면서 읽고, 이해하면서 읽기 바란다. 『근사록(近思錄)』에 보면 ‘글을 읽는 것은 반드시 많이 읽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읽어도 그 핵심을 모르면 책가게일 뿐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니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욕심부리지 말고 단계적으로 읽기 바란다.
독서 얘기가 나왔으니 서치(書癡) 얘기 좀 할까 한다. ‘서치’란 국어사전에 보면 ‘책읽기에만 골몰하여 세상 일을 돌보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정조(正祖) 때 규장각 초대 검서관(檢書官)을 지낸 이덕무(李德懋)를 들 수 있다. 이덕무는 자신이 쓴 <간서치전>에서 자신을 ‘간서치(看書癡)’라고 불렀다. ‘간서치’란 ‘책만 읽는 멍청이’란 뜻이다. 이덕무는 젊은 시절 책만 읽고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머니와 여동생이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신세와 처지를 한탄하는 글을 남겼다. 요즈음 같으면 정신 나간 사람, 현실 감각이 없는 꽉 막힌 사람이라고 하여 사람 취급도 안 했을 것이다. 하기야 강도는 약하겠지만 그 당시에도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그 후 이덕무는 실력을 인정받아 15년간 검서관직에 있으면서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니 그가 독서를 한 것이 그렇게 무기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여동생을 보살피지 않아 죽게 한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독서가 중요하고 생활화 해야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서치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있었다. 유럽의 대표적인 서치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폴레옹을 들 수 있다. 나폴레옹은 전쟁에 패하자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이때 그의 재산목록에 8천여권의 장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니, 그가 엄청난 독서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재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갑부인 워렌 버핏은 읽기 중독중 환자이고, 빌 게이츠는 어릴 적에 책벌레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독서의 중요성을 재삼 인식할 것이다.

아무튼 독서광들은 도서구입에도 열성적이다. 이들은 책만 구입하고 읽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희춘 역시 가사(家事)를 돌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독서광이었으며, 도서구입에 열성적이었다. 『미암일기』에 이와 관계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밤 이경말(二更末)에 내가 갑자기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이는 종일토록 글씨를 쓰고 글을 본 피로 때문이다. …서책괴(書冊黎) 송희정(宋希精)이 와서 인사를 하고 『참동계(參同契)』·『황화집(皇華集)』·『소문쇄록(黎聞黎錄)』·『두시(杜詩)』 등을 가져오기로 약속하고 갔다.… 영광(靈光)의 윤홍중(尹弘中)이 서책을 보내 주며 오래 빌려 주겠다는 허락을 했다. 『당본강목(唐本綱目)』 50책을 포함하여 무릇 14종 2백98책이 왔다. 과연 송나라 이택(李擇) 같은 인자(仁者)의 마음이라 하겠다. 두 바구니에 나누어 넣어서 자리 옆에 두었다.… 첨지(僉知) 홍연(洪淵)이 찾아왔다. 성절사(聖節使)로 10월에 출발을 한다기에 ‘『주자어류(朱子語類)』를 사다 달라’고 청했더니 영공(令公)이 승낙했다.… 천추사(千秋使)의 통사(通事: 역관)인 민호백(閔扈百) 인삼을 받아 가지고 갔는데, 연경(燕京)에서 『백천학해(百川學海)』 10책을 사가지고 왔다.… 짐을 꾸리는데 말마다 가볍게 실어 20필에 실었으니 이렇게 많게 된 것은 나의 서책이 세 필의 말에 실려 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희춘은 항상 독서에 열중했으며, 서책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도서구입에도 열성적이었으며, 그 관리나 보관에도 철저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서적 중 구입할 수 없는 책들은 남에게 빌리거나 서책 교환을 통해 구득(求得)·열람(閱覽)하였고, 이를 대하는 자세도 진지하였다. 더욱이 그는 관직생활의 바쁜 와중 뿐 아니라, 귀향·상경할 때마다 항상 서책을 갖고 다녔다. 한마디로 말해 유희춘은 서광(書狂)·서음(書淫)이었다. 이런 그였기에 선조(宣祖)가 경연석상에서 ‘육갑(六甲)의 첫머리에 쥐를 두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당시 경연에 참석했던 이이(李珥)·기대승(奇大升) 등 경연관들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하였고, 오직 유희춘만이 ‘쥐는 앞발톱이 4개, 뒷발톱이 5개로 음양이 상반되어 갖춘 것은 쥐 밖에 없기에 쥐로 12지(支)의 첫머리를 삼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선조가 그의 박학다식함에 감탄했다고 한다. 열심히 독서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이 가을 아니 금년에 몇 권의 책을 읽었나 생각해보자. 각자 반성하면서 열심히 책을 읽자. 독서해서 남 주나!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