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화관제 당하는 서울 : 오정희의 <어둠의 집> 읽기

어둠 속으로 파행적 현대사와 파시즘이 스며들었다
반복되는 등화관재는 한 가정주부의 내면의식을 허위의식으로 물들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80년대는 70년대의 연속이었다. 일방적인 근대화 정책이 가져다 준 물질적 풍요! 초중고 교실까지 점거하고 있었던 ‘100불 소득과 100억불 수출’이라는 슬로건은 이미 초과달성한 지 오래였다. 잘 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사회가 잘 살게 된 것일까? 김현 교수가 개발독재 정권을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로 야유하고 있듯이 물질을 올리고 정신을 낮추는 것이 잘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정권과 대중매체들은 물질적 풍요와 쾌락만이 잘사는 것이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80년대 초반은 광주의 비극과 구조적 모순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하늘에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물질적 풍요가 구가 되는 사회였다.
오정희의 <어둠의 집>은 한 가정주부의 내면의식을 통하여 당대사회의 허위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는 텍스트이다. 그 여자는 서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주부였다. 간호대에 다니고 있는 딸의 가방에서 발견한 피임약 때문에 분노와 고통을 느끼고 있지만, 남편의 쉰 다섯번째 생일을 위해 깜짝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그 여자의 삶은 여유롭다.
그 여자가 자신의 딸 나이 때 이미 아이를 낳고도 밤마다 콧수염을 기른 클라크 게이블과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는 기억을 되살리며 딸에 대한 분노를 삭이고, 아들의 방에서 육친의 정이 되살아나 눈에 눈물을 흘리는 멜로드라마적인 감상에 젖고 있을 때, “짧고 날카로운 호각소리, 성마른 외침, 골목을 뒤흔들며 튀어 오르는 발소리에 이어 느닷없이 공습경보가 울렸다…<중략>…시민들은 불을 끄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 훈련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중략>…불을 꺼요. 필시 민방위 요원일 사내가 거칠게 구둣발로 대문을 차며 소리쳤다. 그 여자는 곤두박질을 치듯 뛰며 차례로 전기 스위치를 내렸다.” 시도 때도 없이 시행되던 민방위 등화관제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민방위란 적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의 지도하에 주민이 수행하여야 할 방공(防空), 응급적인 방재(防災), 구조(救助), 복구(復舊) 및 군사 작전상 필요한 노력지원 등 일체의 자위적 활동을 말한다.”(민방위 기본법 제 2조) 이렇듯 민방위 훈련은 국가안녕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당연히 주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훈련이었다.
하지만 이 훈련이 순수하게 시행된 것이 아니라 냉전이데올로기의 지속과 정권안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특히 야간등화관제와 전시행동요령 방송은 한반도가 아직도 전시상태임을 주민들에게 일깨워주는 ‘에비’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불이 꺼지고 빛이 사라지자 그 여자는 “폭격과 살상이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바깥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대피하고 있다는 것, 그들은 한 동아리며 둥지 속의 알처럼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파시즘이 그 여자에게 저절로 내밀화되어 있는 것이다.
칠흑같이 어둡지만 안전한 대피소에서 그 여자는 술을 마시며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시작한다. 남편과의 신혼생활, 대동아 전쟁 때의 등화관제, 해방직후 소련군에게 능욕을 당한 일 등 과거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닫힌 안방 문 안쪽에서 소리죽여 소곤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남편과의 부부생활이 불가능해진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자조한다. 그리고 ‘과수원 길’이란 유행가 속에 담긴 영원한 향수를 떠올린다.
그 때 다시 야산의 전주에 매달린 스피커가 왕왕대기 시작했다.
“가상 적기는 격추되었다. 등화관제는 끝났다. 몇 개의 차량이 불타고 가옥이 파괴되었으나 훈련이 잘된 시민들은 공습에 대비해 미리 지하도나 대피소로 피신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야간 등화관제 훈련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담장 밖에 누가 와 서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집안에 들어와 있는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한다. 그 여자의 집 안에 침투한 것은 한국의 파행적인 현대사와 당대 사회의 파시즘이었고 중산층 가정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허위의식이었다. 그 여자가 일찍 귀가한 아들의 벨소리에 불을 켜고 문을 열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등화관제의 어둠 속에서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반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그녀의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 그녀 삶 등 모든 것을 페인트칠로 말끔히 지우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갈 미래의 냉혹하고 창백한 얼굴 모두를 일순간에 통찰한다. 전시도 아니고 계엄상태도 아닌 평화시 서울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등화관제 훈련이 시행되곤 하였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80년대 민방위 훈련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지속과 정권 안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