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이 자랑스럽구려
‘부부 일심동체(一心同體)’·‘부부 동고동락(同苦同樂)’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세태 때문에 그런지 어렵고 힘들 때 부부가 함께 고생하며 극복하려는 마음가짐이나 의지가 예전보다 못한 것 같다.
자고(自古)로 훌륭한 남편 뒤에는 훌륭한 아내가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제(齊)나라 재상 안영(晏 )의 마부(馬夫)는 그의 아내의 분발 촉구로 후일 대부(大夫)가 되었는가 하면, 진(晋)나라 공자(公子) 중이(重耳)는 아내 강씨(姜氏)의 권유로 고난의 망명의 길을 떠나 19년 만에 왕위에 올랐다. 이때 강씨가 한 유명한 말이 ‘지재사방(志在四方: 뜻이 사방에 있다)’이다. 이런 훌륭한 아내들이 있었는가 하면, 남편이 무능하다고 박대하며 헌신짝처럼 차버렸던 주(周)나라 강태공(姜太公: 呂尙)의 아내 마씨(馬氏)나, 한(漢)나라 주매신(朱買臣)의 아내 등도 있었다. 사실 강태공이나 주매신은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강태공은 위수(渭水)에서 10년간 곧은 낚시질만 했었고, 주매신은 50세까지 글만 읽었다. 이랬으니 부인들이 바가지를 긁었던 것도 이해는 간다. 아마 요즘 같으면 1-2년 안에 이혼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생스럽고 힘들더라도 남편을 이해하고 믿고 기다렸다면, 그리고 조금만 참아달라는 남편의 간청을 귀담아 듣고 응해주었다면,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엎지러진 물은 그릇에 담을 수 없다.= 覆水難收)’의 한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포사(褒 )의 미색(美色)에 혹하여 정실이었던 신후(申后)를 폐하였던 주(周)나라 유왕(幽王)이나, 아내를 내쫓고 기생첩 난정(蘭貞)을 정실부인으로 삼았던 윤원형(尹元衡) 같은 남편들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강지처(糟糠之妻: 술지게미와 겨를 먹던 시절 함께 고생한 아내)’를 버렸던 남편들이 있다. 그러나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송홍(宋弘)처럼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았던 남편들이 훨씬 더 많다. 송홍의 경우, 광무제의 과부 누님인 호양공주(湖陽公主)가 당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송홍에게 시집을 가고 싶어 동생인 광무제에게 중매를 요청하자, 광무제가 송홍을 불러 자기 누님과 혼인을 하라고 권했다. 황제의 누님이니 아마 웬만한 사람 같으면 흔쾌히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송홍은 단호하게 천자(天子)인 광무제에게 꾸짖듯이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고 어려웠을 때에 사귀었던 친구일수록 잊어서는 안되며, 술지게미와 겨를 먹고 어려움을 함께 헤쳐 왔던 아내를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말이요,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성종(成宗) 때 장원 급제했던 권경희(權景禧)는 수찬관(修撰官)이 되자, 간관(諫官)들은 그의 아내 김씨(金氏)가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라 수찬관이 될 수 없다고 상소를 하였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며느리 김씨를 버리고 문벌 좋은 집안으로 새 장가를 갈 것을 아들에게 권했다. 이때 효자였던 권경희는 ‘자신의 부귀를 위해 아내를 버리느니 차라리 부귀를 버리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서 절대 새 장가를 갈 수 없다고 하였다.

『미암일기』를 보면 유희춘이 21년간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홀로 시어머니 봉양과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을 뿐 아니라, 평생동안(남편의 귀양살이, 해배·복직 등) 남편 뒷바라지에 열과 성을 다했던 아내 송덕봉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그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아침 식사를 한 뒤 누님을 찾아가 뵙고 작별을 고하는데, 박진원(朴珍原)의 어머니가 와서 자리를 같이 하며 내 아내가 어질다고 극찬하였다.… 전주(全州)에서 부윤(府尹) 노진(盧 )이 가마를 하나 내주면서 ‘딸도 태우라’고 했으나, 아내는 강력히 사양하며 ‘가옹(家翁: 남편)의 뜻이 아니라’고 했다 한다. 그래서 부윤이 세 번이나 청했지만 끝내 듣지 않자 노공이 탄복했다고 한다. 폭쇄별감 정언신(鄭彦信)도 한양에서 여러 번 칭송을 했다고 한다.… 변백윤(邊伯胤)의 처 이씨는 추(樞)의 여동생이다. 이 달 초하룻날 부인의 부름을 받아 여기에 왔다. 부인이 옹색함을 도와주려고 옷을 주었다. 그녀는 옷을 가지고 가서 매양 일가집의 여종들이 찾아오면 자주 옷을 내보이며 부인의 현숙함을 감탄했다고 한다.… 서녀 해성(海成)이 어제 왔다가 오늘 저녁에 갔다. 부인이 여종을 시켜 호송하게 했다. 모든 서녀들을 어루만지고 사랑하기를 상곡부인(上谷夫人)과 다르지 않다.”
유희춘의 아내 여류문인 송덕봉은 효부요, 현모양처였다. 유희춘은 이런 아내가 있었기에 관직생활 뿐아니라 학문에도 전념할 수 있었고, 또 21년간의 억울한 유배생활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송덕봉이 시어머니 3년상을 마치고 남편의 유배지 종성(鍾城)으로 가는 도중 지은 시가 있다. 이 시는 후일 인구에 회자(膾炙)되어 높이 평가받았다. 그 시의 내용은 이렇다. ‘가고 또 가서 드디어 마천령에 이르니 / 동해는 끝이 없어 거울처럼 평평하네 / 부인이 만리 길을 무슨 일로 왔는고 / 삼종(三從) 도리 무겁고 한 몸은 가볍구나’ 부도(婦道)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송덕봉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요새 모방송국 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의 주인공 맹순이와 반성문이 화제다. 조강지처 버리고 잘된 인간 없다. 부부가 어떠한 경우라도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고 의지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