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하루 마치고 꿈없는 잠을 기다리는 사람들

서울 언저리의 농업지대는 땅장사들의 손을 거쳐 족족 개발되었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서울 사람이 아닌 서울 사람들
“원미동은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가난의
공동체’였던 셈이다”
단칸방이라도 자기 집을 갖고 싶은 소망은 계약기간이 다가올 때쯤이면 더욱 더 절실한 것이다. 매년마다 집주인은 방세를 올리고, 이를 맞춰줄 수 없는 사람들은 방값이 조금 헐한 곳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겨야 한다. 그래도 처음에는 서울 테두리 안에서는 살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해마다 뛰는 방값 앞에서 그러한 생각은 무력감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양귀자의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세계의 문학』, 1986. 겨울)는 서울에서의 전세생활을 청산하고 처음으로 집을 장만한 어느 소시민의 의식을 통해 ‘집’을 말한다. 노모를 모시고, 두 딸을 둔 가장인 ‘그’는 서울에서의 전세방 생활을 청산하고 부천 원미동의 연립을 산다. 그도 서울에서 전세방 생활을 경험했던 모든 이들처럼, 계속 떠돌아야 하는 셋방살이가 싫어 다소 무리를 하여 서울 근교의 작은 집을 장만한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서울에서 집을 산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기에, 부천으로 이주를 한 것이다. 서울에서 집을 살 돈은 안 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의 보증금과 적금을 깨서 합하고, 대출을 받으면 그래도 서울 근교의 신흥주거지에 작은 집 정도는 살 수 있다는 자부심 속에서 인생의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어렵게 결정을 내려 산 이 집은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다는 잠깐의 행복함을 제공하고, 이내 애물덩어리로 전락한다.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서울시민으로 살고 있는데 하물며 우리가 그곳에서 쫓겨나 여기까지 오게 되다니, 하는 같지 않은 느낌이 마치 문틈으로 연탄가스가 새어들 듯 조금씩 조금씩 그들 부부를 침식”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오히려 서울에서의 전세방 생활이 그리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의 주택난으로 서민들이 단물을 잔뜩 빨아 먹은 집장사들이 서울 근교로 이동하여 지은 집은 날림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의 집은 이사 오던 해 겨울부터 벽과 천장에 습기가 스며드는 것을 기점으로 고장과 수리가 삶의 일부가 된다. 지은 지 삼년밖에 안 된 집이건만, 집의 어느 한 부분도 고장 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완공된 집은 여전히 ‘공사중’인 상태였다.

“재수가 없으려니”라는 그의 말은 집의 하자가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상 이런 일이 그의 집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인구가 일천만명을 넘어서면서 주택난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서울에서 주택이 100%이상의 보급률을 넘어서 본 적도 없었고, 주택난이 심각하지 않았던 적도 없었건만, 급속한 공업화는 주택 보급률을 더욱 곤두박질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울 언저리의 농업지대들은 땅장사, 집장사들의 손을 거치면서 졸속으로 개발이 되었다.
원래 조(曺)씨 성이 주종을 이루고 살았다고 하여 ‘조마루’라고 불려졌던 곳은 1973년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원미동’으로 바뀐다. 서울의 중추적인 산업지대인 구로공단과 가깝고, 경인선 전철이 지나는 곳이라 어느 곳보다도 서울의 위성도시로 개발될 수 있는 장점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땅 팔아먹고 사는 투기꾼과 이 위에 거푸집을 씌우는 집장사들이 이곳을 휩쓸고 지나간 후에 이곳은 현대적 도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도시로 탈바꿈한다.
그의 집이 사단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히 필연적이다. 과천, 분당, 일산 등과 같이 대규모의 도시기반 시설을 갖추고 만든 도시가 아니다 보니 ‘재수’타령은 연일 이어져서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집수리를 하러 왔던 젊은 인부의 “에이, 아저씨. 그런 집장수들 덕분에 우리도 먹고 사는 거 아녜요. 어디 우리뿐이에요. 원미동만 해도 설비집이 수십개인데 그 사람들 먹여살리는 공은 생각 안 해요”라는 말처럼 집장사의 날림집과 시설설비집들의 공생관계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설비수리공과 집주인의 신경전은 견적을 산출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공사하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들이 혹시라도 잔꾀를 부려 다시 이곳을 뜯게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부라리는 집주인과, 적당하게 수리해야 계속해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수리공들의 살벌한(?) 긴장관계는 1970∼80년대에 양산된 불량주택에서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집을 항상 수리해 주던 설비집의 수리공이 다쳐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시킨 ‘임씨’에게 보내는 시선은 부정적이지만, ‘임씨’의 성실함과 솔직함은 이내 그를 감동시킨다. ‘임씨’도 ‘그’처럼 서울에서 성공해 보겠다고 땅 팔고 올라왔으나 밑천까지 원미동까지 밀려온 사람이다. 그들은 고단한 하루의 일이 끝나면 술 한 잔 털어 넣고 “집으로 돌아 가서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꿈 없는 잠을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원미동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가난의 공동체’였던 셈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발뻗고 자고자 뿌리를 내렸던 곳이 어디 원미동뿐이랴. 서울의 변두리와 서울의 외곽 모두 ‘원미동’인 것을 … ….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