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상업화 되어가는 연애

연애에 관한 짧은 담론

각종 드라마와 영화, 소설과 만화를 점거하고 있는 소재는 단연 ‘연애’들이다. 각종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남녀관계, 사랑과 연애의 기술에 대한 감성적인 담화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어쩐지 유치하고 식상한 문구들에도, 공감하는 댓글은 무수히 달려있다. 연애는 대중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유용한 코드인 동시에 가장 흔한 소재인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 가장 감화된 사람 중에 하나였다. 조숙했던 것인지 되바라졌던 것인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통틀어 내 최대의 관심사는 다름아닌 ‘사랑과 연애’였다. 드라마나 순정만화에 심취해 있었던 그 시절의 나는, 오로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연애를 해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다.(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이렇듯 연애에 있어서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내가, 점점 ‘연애’ 그 자체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그것은 연애가 결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서, 나를 둘러싼 ‘사랑’의 개념이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결혼을 연상시키는 이성애중심의 일대일 관계, 누가 만들어 놓은 개념인지 으레 챙겨야 할 것 같은 기념일, 문화 컨텐츠에서의 커플 우대, 그리고 획일적인 형태의 연애, 연애, 연애들.
연애는 그야말로 복잡한 문화구조 속에 놓여 있다. 나는 그저 누군가와 친밀해졌을 뿐인데, 이동전화 회사들은 커플 요금제를 들이대고, 옷가게들은 커플 룩을 제안한다. 그리고 갖은 이벤트 회사와 꽃집들은 덩달아 번창하고 있다.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가 되면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멋진 선물을 주고받으며 각종 문화 코드에 발맞추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커플들에게는 연애가 교과서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사랑과 연애의 성향이 원래 그러한데, 나만 유독 삐딱한 걸까? 그렇다면 사랑은 너무 비싸고, 데이트는 거기서 거기라는 커플들의 하소연은 배부른 투정에 불과한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에 관한 상업화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 그 관계를 지속시키는 요소들이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것은 아쉽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들이 외면과 허례의식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 연애를 둘러싼 문화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백일 단위로 꼬박꼬박 챙겨야만 하는 기념일, 선물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14일의 이벤트, 이성애 커플중심의 문화는 날이 갈수록 체계적이고 자본적이며 획일적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문화들은 관계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것이 정말 행복하고 친밀한 상태인지는 의문스러워 보인다.
며칠 전, 빼빼로 회사들이 일년 매출의 대부분을 벌어들인다는 특별한 날이 있었다. 자본의 농간인지 자발적 축제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연애를 이용한 각종 문화산업과 마케팅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데, 유독 연애가 비슷비슷한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연애만 그러하랴. 일만번째 커플이라는 모 결혼정보회사의 광고 속 부부를 보며 한참을 고민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이리라. 사랑하는 방법까지 정해놓은 사회 속에서 연애는 결혼을 닮아 있고, 결혼은 남녀 일대 일의 가장 안정적인 형태만을 취하고 있다. 획일적인 가족형태로 가는 지름길, 그 길은 각종 이벤트의 부비트랩과 문화 산업의 호객들로 가득 차 있다.
관계맺음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친밀성에 대한 다양한 사고들, 사랑과 연애에 대한 자유로운 방식들이 우리에게 조금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손으로 만져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것. 나는 여전히 낭만적이고 행복한 연애를 꿈꾼다.
이진주<국문·3> pearl2819@hanmail.net
▲ 지난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였다. 빼빼로 회사들은 일년 매출의 대부분을 이날 벌어들인다.
이진주  pearl28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