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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로 읽어 본 대중문화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

여성주의,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

‘이식된 어떤 이론도 상처의 흔적 없이 다가오지 않는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이하 여이연)가 지난 2003년 출간한「페미니즘과 정신분석」의 서문中.
여성연구자들의 모임 여이연은 여성학 콜로키움과 강좌를 열고 관련 서적을 꾸준히 발간하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모임이다. 이론의 실천은 단순한 담론의 반복이 아니라 문화영역 깊숙이 침투할 때 비로소 작동하게 된다. 서구의 담론으로 구성된 ‘정신분석학’을 여성주의적 시각과 언어로 분석했던 여이연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후속작업을 내놓았다.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는 그 이론의 틀을 확장하여 대중문화를 읽어낸다. 총 3부, 13편의 논고들로 구성된 이 책은 사회적 파장과 흥행을 동시에 거두었던 영화 〈올드보이〉에서 시작하여 드라마, 소설, 기록영화에 이르는 매체들을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가족해체의 위기를 강조하는 우리 시대는 끊임없이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된 ‘정상가족’을 장려하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사회는 비 정상적인 가족(비혼, 무자녀, 비혈연관계)을 배제하고 타자화함으로써 혈연 중심 가족의 정상성을 내세우고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1부: ‘유랑하는 가족들’은 정상가족의 범주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시도들을 분석한다. 방송3사에서 내세우는 가족 드라마들이 한결같이 정상가족을 내세우면서 여타의 가족을 배제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재작년 방영되었던 드라마 <아일랜드>가 제시하는 새로운 가족형태를 점검한다. 드라마 <봄날>과 영화 <올드보이>,<바람난 가족>들 역시 우리 사회가 봉착한 가족위기의 형태들을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한다. 이 시대의 남성들이 스스로 구축해 온 남성성에 의해 도리어 아버지에서 소년으로<올드보이>, 불안에 잠식되는 남성으로<바람난 가족>분열하고 있다는 해석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2부:‘다성적인 주체들’에서는 영화<삼공일 삼공이>와 <거미숲>,<장화 홍련>,<얼굴없는 미녀>를 통해 주체의 개념을 뒤흔들고 있다. 거식증이나 폭식증, 불안과 히스테리, 근친상간적 욕망과 우울증의 징후는 각 작품의 인물과 구성을 통해 다양하게 드러난다. 사회에서 병리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되는 이러한 징후에서 오히려 저항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애로운 어머니 역할에 모든 것을 건 여성이 그 자체로 공포과 공격의 대상으로 전환하거나<삼공일 삼공이> 의사(남성)-환자(여성)의 역할을 전복시키는 히스테리아<얼굴없는 미녀>의 역할이 그러하다. ‘미친년’ 그 자체로는 사회의 주변부이지만, ‘미친년’이 제도에 편입되지 않거나 정상범주들을 비웃어버림으로써 사회의 중심을 뒤흔드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3부:‘타자의 목소리들’은 1,2부에서 진행한 논의에 대한 귀결로도 볼 수 있는데, 주변부로 밀려난 타자들이 어떻게 그 자신의 목소리를 획득하고 있는지 밝혀내고 있다. 사회로부터 천대받으며 그 자체로 ‘한’스러운 삶을 살아온 무당들의 삶과<기록영화, 영매靈媒> 소위 정상적 삶의 방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스로 ‘비정상’에 안주하는 인물들을 형상화한 배수아의<일요일의 스키야키 식당>, 귀신으로 귀환한 소녀를 괴물로 그려내는 대신 화음을 찾아가는 여고생들의 나르시시즘으로 표현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등이 타자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성주의와 정신분석의 조우, 그리고 문화와의 만남은 이 책에 난무하는 용어들만큼이나 생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본적인 정신분석 용어를 이해하고 있다면 오히려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사회적 억압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아서 단순한 제도 개선이나 멋들어진 슬로건만으로는 해체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주변화된 타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해 유랑하고 일탈한다. 타자들의 목소리는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그들을 만나는 일 또한 쉽지만은 않다. 우리들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의 지배구조를 분석하고, 그 안에서 억압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란 단순히 여성들의 권리를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 제도와 사회가 타자를 배제하는 방식을 짚어내고 차별과 억압에 관한 다양한 전복과 저항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론또한 하나의 운동임에 틀림없다.「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는 서구적 이론을 여성의 시각으로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중문화와의 조우를 통해 출구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진주<국문·3> pearl2891@hanmail.net

▲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저자:여이연 정신분석세미나팀, 2005,도서출판 여이연)
인진주<국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