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날 때가 되었으니 물러나리라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알아야”
“전성기 있으면 쇠퇴기도 오는 법”


우리가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출처진퇴(出處進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신중하고 냉정하게 생각한 다음 결정을 내려야 한다. 특히 물러날 때가 중요하다. 그러나 직장인들의 경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할 수 없이 버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기야 당장 그만 두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누가 이런 멍청한 짓을 하겠는가? 괴롭고 창피하고 비굴하지만 참고 끝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굳이 탓하지는 말자. 다만 자기가 조직에서 무능하고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며 월급만 축내는 불필요한 인간, 있으나 마나 한 인간으로 낙인찍힌 것을 알았다면 반성과 함께 자기 개발과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자신을 쇄신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직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깨닫고 개선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망각한 채, 남이 내 실력과 능력을 알아주지 않음을 탓해서는 안 된다. 은(殷) 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이윤(伊尹)도 오랫동안 탕왕(湯王)에게 쓰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요리 솜씨를 익혀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 접근한 결과, 탕왕은 그제야 이윤이 현자(賢者)임을 알고 등용했다. 탕왕과 이윤이 훌륭한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하물며 이런 현인들도 그랬다. 지금 같으면 이윤처럼 하기도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이윤의 이러한 정신은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전은커녕 답보 또는 퇴보상태라면 그때는 물러나라. 더 이상 추한 꼴을 보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자기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 점을 명심하자.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열과 성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쓰일 기회가 없는 사람이나,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고 열심히 일하다가 자신의 역할이 끝났거나 한계를 느꼈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미련 없이 물러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힘들고 어렵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다른 분야에 도전을 해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분수와 능력을 알고 사는 것이 좋다.

「미암일기」를 보면, 유희춘이 관직에서 물러날 때임을 알고는 선조(宣祖)와 선후배 동료 관리들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는 내용이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신(臣)은 본시 여위고 약한 몸으로 지난 정미년(丁未年: 1547) 겨울에 제주(濟州) 적소(謫所)로부터 종성(鍾城)으로 귀양살이를 옮기게 되어 북으로 삼천리를 가는 동안에 매서운 겨울바람에 감촉되어 사람들이 모두 꼭 죽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북쪽 사막(沙漠)에 도착하여 얼어붙은 땅에서 19년 동안이나 찬바람에 시달리고, 그 간에 세 번이나 열병(熱病)을 겪고서 겨우 잔명을 유지하였으므로, 지금 노쇠한 지경에 이르러 상체는 냉하고 하체는 갈(竭)해서 해가 갈수록 점점 그 증세가 심해지고 있어 하룻밤에 물을 마시는 것이 6·7회에 달하므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사옵니다. 이것이 불가불 물러가야 할 이유의 하나입니다. 신은 어려서부터 발병(足疾)이 있어 잘 걷지를 못했었는데 장년기에 조정에 있을 적에는 오히려 견딜 만 하더니 지금 노쇠하고 보니 걸음을 걷기가 매우 곤란하옵니다. 억지로 걸으며 따라 다닌다는 것도 역시 염치없는 일이오니 이것이 부득불 물러가야 할 두 번째 이유입니다. 신은 노둔하고 용렬하여 본시 아무 장기가 없사옵고 다만 장구(章句)와 문의(文義)에 대한 천려일득(千慮一得)으로 성명(聖名)께 알려져서 사서(四書)의 석소(釋疏)와 「대학(大學)」·「근사록(近思錄)」 등의 부록을 만들라는 명을 이미 받자왔고, 신이 「강목(綱目)」을 경연에서 상고해 본 나머지 역시 한 권의 책자를 만들어 올리려고 하옵는데, 책을 편수하는 공부는 벼슬살이하여 겨를이 없는 자로는 될 수 없는 일이오니 이것이 부득불 물러가야 할 세 번째 이유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자(聖慈)하신 전하께서 신의 노병이 위태함을 애련히 여기시어 신의 분수에 맞게 살겠다는 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라옵나이다. … 신이 만약 책자를 만들고 목숨이 붙어 있다면 어찌 한 번 올라와서 천안(天顔)을 뵙고 돌아가지 아니하오리까. 신의 간청하옵는 바는 다른 사람의 처지와는 같지 않사옵니다’ 주상께서 말씀하셨다. ‘경(卿)의 일은 확실히 다른 사람의 처지와 같지는 않소. 다만 한양에 있더라도 역시 노병(老病)을 간호할 수 있고, 비록 벼슬살이를 하더라도 한가하면 역시 책을 저술할 수 있는데 어찌 꼭 물러가야만 되겠소? 경연의 일이 매우 중하니 퇴직을 윤허할 수 없소’ 하셨다. …마침내 주상께서 사직을 윤허하셨다.”
이처럼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알았던 유희춘은,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간파하고 물러났던 것이다. 「역경(易經)」에 보면 ‘해는 하늘 가운데 오면 기울어지고, 달은 차면 이지러진다’는 구절이 있다. 해는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은 만월이 되면 차차 이지러지듯이, 인간도 전성기가 있으면 쇠퇴기도 반드시 온다. 이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물러날 때가 되면 깨끗이 물러나자. 과욕은 절대 금물이다. 이를 어기면 치욕만 남길 뿐이다.
※ 그동안 보잘 것 없는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조선시대 선비이야기’를 마칩니다.-필자 올림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