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지상의 모든 밤들

슬프고 아프게 빛나는 밤에
“나방의 날개일지라도 빛나 보일…”


앙상한 나무들을 뒤덮은 꼬마전구가 노랗게 빛나는 밤, 바람이 몹시 불었고 사람들은 종종걸음 치며 흩어지고 사라졌다. 나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된 역전을 지나 길을 건넜다.
그렇게 딱 한 블록, 화려한 용산 역을 마주한, 그러나 낮은 지붕들로 잘 가려진 그 골목은 텅 비어있었다. 간간이 조명을 붉게 밝힌 유리문 안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을 뿐, 대부분의 상가들은 낡은 셔터를 굳게 내려닫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 후 찾아간 혜화동의 작은 소극장에서, 나는 사라진 ‘그녀들’ 중의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착잡하고도 복잡한 마음으로, 나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연극 「지상의 모든 밤들」(김낙형 작·연출, 소극장 혜화동 1번지)은 성매매 특별법 시행 후 단속을 피해 집결지에서 떠나온 여성들의 작은 피난처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도시 근교로 피신시킨 뒤 사라진 업주를 기다리며, 그녀들은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15년 동안 ‘그 일’을 해왔다는 래경, 그런 래경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은영, 비만 오면 자신을 팔아먹은 ‘그 새끼’의 입 냄새가 그립다는 지연, 미용사가 꿈인 ‘미성년’의 소영.
거처를 빌려준 대학원생 승길은 자신의 논문을 위해 그녀들을 관찰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하여 그저 입을 다물 뿐이다. 동네 주민들은 낯선 그녀들에게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더 이상 갈 곳 없는 그들의 행보는 위태롭기만 하다. 결국 그녀들의 허술한 거처는 선불금을 받으러 온 포주 ‘개고기’에 의해, 시민사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방인을 위협하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유린당한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작품은 시시콜콜 꺼내놓거나 복잡하게 꾸미지 않는다. 툭툭, 그러나 힘 있게 던지는 그녀들의 말 한마디와 과장되지 않은 몸짓은 폭력의 굴레와 억압된 내면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끝내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불편하고도 복잡한, 그러나 슬픈 마음을 정리할 수 없던 나에게, 그녀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가 범죄자이면 피해자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피해자는 누구야?”
성매매 특별법 이후,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성매매 문제는 혼란과 반목 속에 더욱 난제로 대두되고 있다. 종래 윤락행위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선량한 풍속’을 보호하려 하였던 법제를 대체하면서 ‘성매매’라는 용어를 공식명칭으로 채택한 이 법안은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이 불법이며 실제로 처벌된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또한 성매매 되는 여성들이 이 법을 통해 성 구매 남성들과 포주와의 관계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재활의지를 가진 탈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는데 턱없이 미미했던 예산이 부족하게나마 근거를 확보하게 된 것도 큰 성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의 시행착오와 한계도 많았다.
근절해야 할 것은 ‘성매매’이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선적으로 그녀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보장해야 했음에도 법 시행은 집결지의 단속으로 이어졌고 그녀들은 더욱 눈에 띄지 않는 업소로 대거 피신해야만 했다. (집결지가 전체 성 매매 중 극히 일부분이라는 현실은 성매매가 우리의 일상과 주변의 비가시화된 공간에서 무수히 넘쳐난다는 것을 그대로 반증한다)

이 법의 유예기간과 폐지를 요구하던 성매매 종사 여성들의 시위와 집회가 많은 여성주의자들과 여성단체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모순과 진통이 ‘성매매’라는 난제를 향해 맨발을 내딛는, 그리하여 누구도 이 문제를 타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지점에 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극 「지상의 모든 밤들」은 쉽사리 근거 없는 희망을 내어놓거나, 대책 없는 고통만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격렬한 분노, 낮고 섬세한 슬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날카로운 언어와 몸짓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환하게 빛나 보일 필요가 있어요. 그것이 나방의 날개일 지라도.”
래경의 이 대사는 그래서 더욱 아프고 슬프다. 남루한 창을 통해 속삭이는 그녀의 언어가 관객과 더불어 절절히 공감하는, 그곳은 지상의 작은 무대였다.
이진주<국문·3>
pearl2891@hanmail.net


캡션
1. 연극 「지상의 모든 밤들」은 성매매 특별법 이후 단속을 피해 집결지에서 떠나온 여성의 작은 피난처를 배경으로 삼는다.

2. 성매매매 특별법이 시행된지 1년이 조금 지났다. 이 작품에서는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유린당한 그녀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진주<국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