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58) 야자와 아야의 ‘NANA’


같은 이름, 다른 꿈을 향한 스무살의 여정
스무살다운 감정이 담긴 ‘NANA’


1. 야자와 아야의 만화 <NANA>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 도쿄로 향하는 기차칸에서 스무살의 두 여자아이가 만난다. 진한 스모키 눈화장에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오사키 나나’와, 눈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마냥 즐거운 ‘고마츠 나나’. 둘은 외모에서부터 성격, 살아온 배경까지 무엇 하나 비슷한 것이 없지만 그날 밤의 눈발 속에서만큼은 절친한 친구이다. 각기 다른 희망과 꿈, 상처를 안고 오른 도쿄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대로 헤어진 둘은 집을 구하던 중, 전망좋은 아파트 707호(일본어로 나나는 행운의 7을 상징한다)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 ‘오사키 나나’는 화려한 외모와 달리 어릴 적부터 늘 혼자였다. 사랑과 노래, 살아갈 희망을 주었던 ‘렌’이 메이저 데뷔를 위해 도쿄로 떠나자 그녀는 라이벌이 된 그를 능가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래한다. ‘고마츠 나나’에게는 장래희망이라든가 인생의 목표가 따로 없다.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그녀는 세상 무엇보다 ‘사랑’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 그녀에게 오사키 나나는 ‘하치’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순정만화 사상 최고의 판매부수 3천 2백만부의 기록을 세워 화제가 되었던 ‘야자와 아이’의 <NANA>는 각기 다른 두 소녀를 통해 스무살의 사랑과 좌절, 꿈과 아픔을 담고 있다.

현재 14권까지 연재되면서 폭팔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NANA>의 성공비결은 한마디로 ‘스무살스럽다’는 점이다. 패션을 전공한 작가의 센스가 빛을 발하는 두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독특한 의상, 아기자기한 소품, 각기 다른 개성 그 자체로 똘똘 뭉친 인물구성, 감각적인 대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성은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다. 그러나 <NANA>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비주얼한 구성만이 아니다. 두 소녀의 우정(애정에 더 근접한)과 성장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은 섬세하고 날카롭다. 마음을 닫아두면 행복이 달아나 버린다고 믿는 하치와 아무에게나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나나.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하치와 단 하나의 사랑, 그러나 단 하나의 꿈을 선택하는 나나. 서로에 대한 동경과 집착, 진심어린 애정과 깊은 이해로 어우러진 그 둘의 동거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처럼 독자에게 스며든다. 소녀시절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대한 나나들의 고백은 그것을 사랑이라고도, 우정이라고도 명명하지 않는 경계에 서 있다. 그러나 심각하거나 비장하지 만은 않게, 유쾌하고 애잔하게 다가온다. 정말 ‘스무살다운’ 감성 그것으로.

2. 오타니 켄타로의 영화 ‘나카시마 미카’와 ‘미야자키 아오이’의 <NANA>

<NANA>의 인기는 순정만화 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일본에서는 나나의 화장과 나나룩이 유행했고, 나나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 만들어졌다. 원작 속에 등장하는 두 밴드 ‘블랙스톤’과 ‘트랩네스트’의 곡을 담은 앨범도 발매되었다. <NANA>는 스크린으로도 변신해 지면에 갇혀있던 인물들을 책 밖으로 탈주시켰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주제곡 ‘눈의 꽃’을 불러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나카시마 미카와 만화책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귀여운 얼굴의 미야자키 아오이의 캐스팅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 <NANA>는 ‘되도록 원작과 똑같이 만들고 싶었다’라는 감독의 의도에 맞게, 한 장면 한 장면이 만화의 컷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나나들의 의상과 대사, 배경과 소품에서도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영화는 도쿄에 상경한 두 나나가 함께 살게 되는 과정과 실연, 사랑을 되찾는 이야기까지 원작의 내용을 1/3가량 담고 있다. 그러나 원작을 그대로 연출하는 것에 급급해서인지 감독의 호흡이 역부족이었는지, 영화는 만화보다 조금 맥빠진다. 오사키 나나의 카리스마와 하치의 사랑스러움은 피상적으로 그려지고, 주변 인물의 개성또한 빛을 발하지 못한다. 주축을 이루는 두 나나의 감수성을 감독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원작에서 상상했던 음악과, 생생한 나나들의 비주얼함을 느끼고 싶다면 한번쯤 봐주어도 좋을 듯. 영화<NANA>는 이번달 30일에 개봉된다.
이진주<국문·3>
pearl2891@hanmail.net


▲ 야자와 아이의 만화 ‘NANA’(좌)와 오타니 켄타로의 영화 ‘NANA’(우)
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