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서울 76 이문열의 「서늘한 여름」：경인고속도로는 욕망과 배설의 관로(管路)이다
입주과외 형제의 월미도 나들이 길
형은 동생 앞에서 허영을 부려 보지만 이내 좌절한다

인천, 한국의 개화기를 떠올릴 때면 항상 언급되는 도시이다. 병자수호조규(丙子修好條規)의 결과로 개항한 3개의 항구 중 하나이다. 수도인 한양에서 가까웠기에 다른 어떤 곳보다도 개화의 여파가 강했던 인천은 서울과 지정학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한국 최초의 철도도 경인선이었고, 한국 최초의 고속도로도 경인고속도로였던 만큼 인천은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서울과 쌍생아처럼 움직이는 도시였다.
1889년 제물포와 노량진 사이를 오가는 경인선 열차가 개통되면서 인천은 서울과 한 나절 거리의 가까운 곳이 된다. 이후 1900년 7월에 한강철교가 놓이면서 경인선은 서울에 있는 학교로 통학하는 학생들의 통학생 열차이자, 서울 학생들의 소풍열차가 된다. 이틀 상간의 거리를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로 좁힌 것은 교통의 발달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1968년 경인 국도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구로 공단 등에서 생산한 수출품들을 인천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하여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된다. 경인고속도로의 개통은 두 도시의 거리를 1시간 안으로 단축하였으며 서울 사람들의 나들이도 인천의 곳곳으로 확장된다.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기존의 철도가 전철화(경인선이 전철화된 것은 1974년 8월 15일이었다)되면서 서울 사람들은 서울 밖에서 놀 곳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문열의 「서늘한 여름」(『이문열 작품집』, 심지, 1987)에서는 서울 사람들이 자주 찾는 유원지(遊園地)의 변화를 보여 준다. 경인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까지 서울 사람들이 피서지로 자주 찾았던 곳은 ‘광나루’와 ‘뚝섬’이었다. 물론 일제강점기부터 유원지로 개발된 우이동 일대가 여전히 유원지로서의 영광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바다와 접해있는 인천까지 고속도로로 가는 것은 색다른 느낌을 주는 피서였을 것이다. 입주 과외를 하고 있는 국립대학생 형제는 그들로부터 과외를 받고 있는 우둔한 제자들을 데리고 월미도(月尾島)를 향해 출발한다.

이들 형제는 경상도에서 성장해서 서울에 있는 국립대에 입학했으나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입주과외를 한다. 그런데 이들 형제가 그들의 물주로부터 받은 금액은 그들이 입주과외를 하고 있는 지역처럼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형이 가정교사를 하고 있는 지역인 ‘약수동’은 김지하의 「오적」에서도 풍자된 서울의 신흥부유층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에 비하여 동생이 입주과외를 하는 ‘신촌’은 상업지역이다 보니 그의 물주는 장사치였고 한 푼의 돈도 아까워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지방의 수재로 성장한 이들 형제에게 있어서 ‘허영기 많은 약수동 여자’와 ‘노랭이 신촌 장사치’의 자식들은 밥줄의 근원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볼 때 세상물정 모르는 ‘병신’이거나 ‘백치’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모처럼 탐욕에 물들어 냉철한 판단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형제는 가난하다. 가난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이들은 한 도시 안에서 이산가족이 되어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형은 법학과 학생답게 입주과외의 수요도 많았고, 수요층도 돈 많은 이들이다. 그러나 동생은 같은 국립대에 재학 중이지만, 문과생이다 보니 수요가 거의 없거나, 있다 해도 짠 맛을 풍기는 이들만이 물주가 되었다. 같은 학교라도 일반인들이 출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학과에 대한 인기는 가정교사로서의 인기와 비례하는 셈이었다.

형은 월미도로 향하는 길에서 자신이 숙식하고 있는 ‘약수동’의 인간들처럼 허영을 부리며, 동생의 소심함을 질타한다. 물론 이는 자신의 오랜 입주과외 생활에서 터득한 경륜을 뽐내는 것이지만, 그도 서울에 갓 상경한 촌놈과 오십 보 백 보일 뿐이다. 자신 있게 월미도로 갈 것을 결정하고, 호기를 부리며 경인고속도로를 택시를 타고 와서, 그들의 게걸스러운 제자들에게 경양식집에서 포식을 하게 했던 것은 자신의 물주를 경멸하면서도 그들의 지위를 동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의 이러한 상류사회 아니, 신흥 부르주아로의 편입에 대한 희망은 웬만한 목욕탕 값보다 비싼 유료 해수욕장에서 또 한 번 좌절한다. 그리고 해수욕장 곳곳에 설치된 유료 시설들은 형의 상승욕망만큼이나 거쳐야 할 난관이 적지 않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유한계급들만이 향유할 수 있게 만들어진 철저한 오락장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고학생이 피서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인천까지 나들이를 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휴식조차 할 수 없는 곳에 오는 것이 쉬웠을까 ?
1970년대 한국사회의 변화는 경인간의 시간단축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경인고속도로를 오가는 차들이 물류를 수송하는 차량들만이 아니듯이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인간의 욕망도 빠른 속도로 형성되고 분해되었다. 새롭게 조성된 인천의 유원지들은 한국자본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욕망을 배설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당일치기로 갔다 오지 못했던 월미도가 당일치기가 가능해지면서 송도가, 영종도가 그 역할을 이어 받았던 것이다.

김재관<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1968년 개통된 경인고속도로는 서울 밖으로까지 놀 곳을 확대시켰다.
김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