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서울77층간소음의 즐거움：최수철의 <소리에 관한 몽상> 읽기

소리·빛·냄새·어둠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사내
그들에게 엿듣기는 관음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몸부림
1980년대 들어오면서 서울은 아파트와 연립주택 천지가 되었다. 이런 집단적 공동주택이 시민들의 주거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자 주차문제, 층간소음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야기되었다. 특히 층간소음 문제는 아파트의 개인성과 익명성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잠재된 폭력 변수였다. 최근에도 아래층과 윗층 사람이 층간소음 문제로 쇠파이프를 들고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평온한 듯이 보이는 아파트 숲 곳곳에는 이웃 간의 반목과 갈등, 폭력의 폭발 가능성이 이렇게 잠복되어 있는 것이다. 건축법이 2004년에 개정되어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하여 바닥 두께에 대한 규제가 행하여지고 있지만 층간소음 문제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층간 소음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수철의 <소리에 관한 몽상>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박찬중은 51번 좌석버스의 배차원이었다. 그는 고향에서 서울로 도피해 온 사람이다. 그는 항상 “어떤 이유, 어떤 의미로든 서울보다 더 좋은 도피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은 1.5미터쯤 되는 높이의 의자 위에서 51번 좌석버스가 지나가는 시각과 버스 속에 탄 인원을 확인하여 배차시간표에 기입하는 단순한 일이었다. 오후 두시에서 시작해서 아홉시나 열시에 끝나는 고된 일이기도 했다. 그의 귀는 거리의 소음에 무방비 상태였다. 그런데 그의 귀는 의자 옆의 맨홀뚜껑 위에 올라서서 땅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와 물의 흐름에 따른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거리의 소음에 대한 주체적인 반응이었다. “피곤하고 지루한 틈 사이사이에 이런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그는 자신이 이 직업에 있어서 조금씩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의 이런 감각을 깨우게 된 것은 그의 아파트 윗 층에 사는 칼 귀 사내 덕분이었다.

김인권이라는 그 사내는 아래층에서 벌어지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었다. 그가 그 사내에게 자신을 감시하고 있냐고 항의하자, “나는 내 청각의 정확함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밤에 나는 바닥에 귀를 붙이고 누워서 형씨 집의 가재도구들의 배치도를 작성한 것입니다. 간간이 웅웅거리는 냉장고와 TV수상기, 책장 등의 위치말입니다. …그 외의 악의는 없습니다”라고 변명한다. 그는 몇 번의 만남을 통하여 사내와 자신의 상이점과 공통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 사내는 고향에 원한을 품고 서울에 정착 한 사람이었다. 사회와 생활 문제에 관심을 가진 그와는 달리 사내는 항상 소리와 빛, 냄새, 어둠 그리고 다시 소리와 같이 소리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고 있었다.
늦게 귀가한 그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고 “물갈음 손잡이를 누르자 물이 빠지는 요란한 소리 속에서 낮고 요기로운 휘파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그 소리는 그가 혼자라는 사실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했다” 그의 이런 외로움은 우연히 손에 만져진 죽은 바퀴벌레의 껍질 때문에 더욱 강해진다. 그는 자신의 피부가 코끼리나 하마나 악어의 가죽처럼 죽은 후에도 형태를 유지하는 가죽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죽은 후에 사람들이 아파트 문을 부수고 들어와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 시체가 바로 그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현대사회의 절대고독과 단절된 인간관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그도 사내처럼 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을 엿듣게 된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마치 입이 달려 있는 한 외계인이 입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도 초능력으로 지구인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듯한, 손에 닿을 듯이 아주 가까이에서 울리면서도 그 근원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혼자 살면서 늦게 귀가하기 때문에 김인곤에게 이런 소리를 못들려줘서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느 날 한 밤중에 문득 잠에서 깬 그는 윗 층에서 나는 불규칙적인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석조 지하 감옥의 독방에 갇힌 죄수가 극단적인 고독 속에서 간수가 잠든 한밤중에 옆방의 다른 죄수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밤새껏 이어진 소리는 사내를 데리러 온 사람들에 의해서 마침내 그치게 된다. 사내를 다시 정신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사내와 침입자들 사이에 활극이 벌어진 것이다. 침입자들 속에는 사내의 어머니도 있었다. 끌려가는 사내는 그의 현관문을 발로 차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나가지 않았다. “복도에 남아 있던 몇 마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아파트의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뒤이어 바깥에서는 자동차가 요란한 소리를 남기고 떠나갔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그의 눈에는 복도의 창문을 통하여 넝마조각 같은 하늘이 소리도 표정도 없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와 사내에게 층간소음은 인간을 느끼고 이웃과 관련을 맺게 해주는 긍정적인 매체였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두 사람은 아직까지 고향에 대한 아픈 기억보다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단절된 인간관계가 더욱 지옥 같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의 정을 느끼기 위해 방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엿들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엿듣기는 관음증적인 엑스터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공동주택은 주차문제, 층간소음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시켰다.
장두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