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69

디자인하우스 30주년 전시회 - ‘여자를 밝히다’

페이퍼 갤러리에서 부활한 역사 속의 위대한 여성들
그녀들에게 씌워진 오만과 편견을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내

“낸시 랭, 김중만, 리우 청 등 국내외
역량있는 아티스트 30인의 공간”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후대 역사가에 의해 만들어지며, 기억되며, 그리고 호명된다. 키이스 젠킨스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통해 그동안의 역사가 지배 계급, 지배 성별과 국가를 주체로 구성되어 왔음을 밝히고, 역사 속에 묻혀져 왔던 타자들- 여성, 하부계급, 제 3세계 등이 발굴되고 전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가 history, 즉 남성들의 역사라는 것은 잠깐 기억을 더듬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신사임당, 유관순, 그리고 멀리는 평강공주 정도? 그나마 기억에 나는 여성들도 현모양처, 숭고하고 희생적인 애국자, 혹은 기생이거나 타락한 여성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여성의 존재는 그 자체가 순종적인 성향으로 해석되거나,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도리가 응당 그러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귀결되기 일쑤였지만, 태초 이래로 지금까지 여성은 세상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의 의미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살아 숨쉬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누구에 의해, 어떤 맥락에 의해 삭제되고 폄하되어 왔는지를 밝히는 것은 빈약하고 편협한 가부장적 역사관을 바로잡는 일이며 인간에 대한 가장 총체적인 이해라고 생각한다.

역사속의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녀들에게 씌워졌던 오만과 편견을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낸 전시, ‘여자를 밝히다’는 이런 갈증에 시달렸던 이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공간이다. 낸시 랭, 김중만, 리우 청등 국내외의 역량 있는 아티스트 30인에 의해 만들어진 이 공간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인물들 뿐 아니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거나 부도덕한 인물로 평가되어 온 여성들의 삶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 세계 최초로 장기 독무 기록을 세웠던 무용가 최승희의 광기어린 춤사위, 역사속의 악녀로 그려져 있지만 적서차별을 없애는 법을 만들었던 정난정, 단지 이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명성과 부를 잃어야 했던 예술가 나혜석, 주몽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야 비로소 존재가 알려졌지만 삼국사기의 서막을 열었던 뛰어난 정치리더 소서노, 기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인이었으며 왜장과 함께 죽음으로써 남편의 복수를 이룬 논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탕녀로 기억되는 어우동의 도발적이고 자유로운 삶 등 이 공간의 여성들은 마치 그동안의 모든 오해와 불신을 종식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열정과 환희에 찬 아우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여성들에게 성녀와 창녀라는 이분법은 여성 내부의 적을 상정하게 하고 스스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남성들의 권력과 연대를 지탱한다.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는 ‘정상가족’ 안에서 남성을 보살피는 방식으로 발현될 때 가장 칭송받게 되는 것이다. 모성에 대한 강박적인 강조는 필연적으로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며, 정숙한 여인을 원초적으로 탈성화시키고, 그 반대편에 있는 여성을 오직 성욕으로만 환원한다. 이러한 이분법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삶의 가능성과 간극에 대해 묵인하며 여성의 역할을 극히 단순한 것으로 일단락 시키는 가부장제의 속성이기도 하다.
페이퍼 갤러리에서 부활한 우리 역사 속의 여성들은 누구보다도 삶을 영위했던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누구누구의 아내, 어떤 위인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무수한 우리의 여성조상들 또한 마땅히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움과 천재적인 재능을 박탈당하고 권력과 사회적 지위로부터 배제되었던 비극적 역사는 비단 과거의 일뿐 아니라 현재에도, 앞으로도 재현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 ‘여자를 밝히다’는 이러한 역사·문화적 현상에 정면도전하면서 대안적 물꼬를 틀고 있다. 이렇게 밝혀진 불씨 하나가 민들레 꽃씨처럼 널리 퍼지고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녀들과 함께,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는 마사 킨더의 말을 기억하며, 나누고 싶다.

이진주<국문·3> pearl28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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