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71

대중매체 속의 비혼

대중매체의 새로운 주인공
‘왜 결혼하려 하느냐?’ 당당히 반문하는 세대

지난 2005년, 드라마 ‘삼순이’가 대대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을 때, 이미 대중매체들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두 비혼 여성의 사랑과 삶을 그린 영화 ‘싱글즈’, ‘노처녀’들의 도발적이고 솔직한 일상을 담은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 새로운 가족의 모델을 제시한 ‘가족의 탄생’, 전문직 비혼 여성들의 삶을 그린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등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의 삶은 이미 트렌드와 소비문화의 대표주자로 등장했다. 이전의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의 삶이 히스테릭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진 데 비해 놀라운 변화이자 발전이었다.
‘정상가족’으로 지칭되는 기존 가족관계에서 여성의 역할은 ‘모성과 인내, 순종’ 등의 이미지로 점철되어 자신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지니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존의 가족드라마들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전적으로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다면, 새로운 영상매체의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은 주제에, 제법 잘 먹고 잘 산다. 그녀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된장녀’, ‘저출산의 주범’, ‘이기적인 개인주의자’ 등으로 뒤섞여 나오는 것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부장제 사회의 치졸한 저항이기도 하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여성들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는 ‘온스타일’역시 기존의 결혼과 혈연관계에서 자유로운 삶에 대한 상상력을 일깨운다. 자극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말초신경을 자극한다는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온스타일’의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이미 우리 삶의 구체적인 패턴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이혼, 맞벌이 등이 확산되면서 혼자 거주하는 ‘1인 가구’가 5년 새 43%로 증가했으며, 전체 가구수 중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비혼 인구 또한 6백50만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혼인, 특히 비혼여성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그동안, 미성숙·미완의 의미를 담은 ‘미혼’으로 불리며 ‘노처녀’, ‘애어른’, ‘독신주의자’라는 오명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성별, 장애, 계급, 인종 등 어떤 차이에 의해서건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듯, 결혼하지 않음으로 인한 차별은 비혼들의 삶 전반과 직결된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이것은 국가의 모든 제도와 문화가 이성애 정상가족 중심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왜 결혼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왜 결혼하려 하느냐?”라는 대답은 역설적이다. 결혼은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장려되는 가장 정상적인 삶의 규범이므로 스스로를 설명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지만, 결혼하지 않음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설득시켜야 하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박은 비혼이 결혼에 대한 공격인 것처럼 오해되거나 ‘저출산 고령화’ 이슈에 단골 메뉴로 등장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호도되기도 한다. 비혼자들이 기혼자들에 대해 특별한 악감정이 있는 것도,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담론은 실체 없이 매체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미 비혼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조디 포스터, 안젤리나 졸리, 마돈나 등 비혼스타들의 화려한 삶은 결혼과 이혼 여부, 성 정체성, 입양 등의 다양한 쟁점을 넘나들며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보여준다. 이들은 기존의 결혼이 지니고 있는 종속적이고 억압적인 성별관계, 혈연 가족의 한계를 명징하게 지적할 뿐 아니라, 새로운 대안가족의 전형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4만5천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여성주의 포털 사이트 ‘언니네’의 회원들이 지난 2005년부터 지속해온 비혼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몰아 새로운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행사 ‘비혼,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는 당당하게 비혼을 선택한 이들의 비혼선언과 축하공연이 열린다. 트렌드이면 어떻고, 비장한 결심이면 어떠랴,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그들의 축제에 한번 참가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진주(국문·4)
pearl2891@hanmail.net
이진주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