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73 아름다움의 기준, 폭력의 성정치
여성의 아름다움, 일반적 기준에 물음표를 던지다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만큼 순수한 것이 없겠지만, 때로 아름다움은 잔인하리만치 폭력적이다. 아름다움을 수용하고 향유하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과 그 기준이 조금도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불고 있는 44사이즈 열풍은 거식증을 감당하고라도 살을 뺄 것을 강요한다. 패션잡지의 단골메뉴인 성형수술 소개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쌩얼’의 자신감을 되찾으라고 재촉한다. 심지어 관상도 변화시켜 없던 복도 만들어준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술까지 등장했다. 미용과 의료의 상업적 야합은 수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멀쩡한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고 변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철저한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연결되는 이 상업시장에서, 성공사례만큼이나 실패사례(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 성형 부작용, 이에 따른 사망 등등) 또한 빈번하다. 안타까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불편하고 서글픈 마음에 앞서 분노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의 원인이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기록적인 관객 수를 확보하며 극장가를 휩쓸었던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지위가 오로지 외모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주인공 한나의 삶을 설명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몸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한나는 주변 사람들의 빈축을 사거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추녀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형으로 인해 삶의 모든 상황이 바뀌면서 부와 명성, 그리고 사랑까지 얻게 된다는 그렇고 그런 스토리는 잔인하리만치 현실적이다. 영화는 주인공 한나의 삶을 통해, 사회가 여성의 몸을 재현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성형을 해서 예뻐지지 않는 한, 한나를 비롯한 추녀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 우습고 슬픈 현실 속에 남는 의문은 한나의 아름다움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에 의한 것인가, 라는 점이다.

아름답지 않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고 확대되어 왔다. 코미디 프로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희화화되는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제는 모든 공중파·지상파 방송의 아나운서에서 리포터까지 ‘키 크고 마른 미인들’ 일색이다.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비판이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지금, 여성들은 자신의 지위 상승과 직업 선택을 위해 끊임없이 살을 빼고 얼굴을 깎아야 한다. 여성 구직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적되는 ‘용모단정’은, 여성들로 하여금 ‘외모생존’에 매달리도록 강요하고 있다. 여성의 지위 향상과 남녀평등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사회는 여성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외모경쟁의 살얼음판을 깔아놓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여성의 미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다. 44사이즈는 기본, 쌍커풀과 오똑한 코, 새하얀 피부와 고른 치열은 필수. 근육이 발달되거나 살집이 있는 하체는 저주받은 것으로 치부된다. 새처럼 가느다란 종아리를 위한 근육절제술은 옵션이다. 거의 변태적 취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기준은 여성의 몸을 연약한 것, 건강하지 못하거나 나약한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끊임없이 ‘보호되거나’, ‘지켜져야 할’ 수동적 타자로 전락시킨다. 반면 몸에 살이 많거나, 덩치가 있거나, 씩씩한 여성은 ‘여성답지 못한 존재’, 혹은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환원되고 만다. 성차별, 인종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외모차별이라는 말이 더는 농담이 아니다. 그 누가 이 차별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으랴.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성애화된 미적 기준에 대한 모든 책임과 비난이 결국 여성에게 귀결된다는 점이다. 다이어트와 성형이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말초적인 상업성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른 성공여부, 하다못해 부작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이 그것을 선택한 여성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여성잡지의 일면을 장식하는 성형·다이어트의 예찬과 이에 대한 누리꾼들의 쌩얼 타령, before와 after 사진 사이의 악플질에 안티를 걸며, 이 선택을 강요하고 부추기는 사회의 모든 ‘일반적 기준’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이진주(국문·4) pearl2891@hanmail.net
이진주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