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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여성연출가전, ‘4 GO STORY’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도전하는 여성 연출가들

유쾌하고 전복적인 여성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기술한 바 있다. 역사를 개괄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통용되는 이 논리는, 우리에게 과거에 관한 무한한 의문과 고민을 던지게 한다. 이러한 고민은 특히 역사의 정설이라기보다, 자칫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정도로 보일 수 있는 설화의 경우 더욱 중요해진다. 신화는 고대 사람들의 인식체계와 가치관, 삶의 다양하고도 섬세한 특성이 총 망라된 복합적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화를 재해석하는 과정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의도적일 수밖에 없으며, 권력을 지닌 자들이 점해온 역사의 주류에 의문을 던지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여성적 욕망을 지닌 4인의 여성 연출가들이 신화·설화를 재해석한 공연이 대학로 한복판에서 펼쳐지고 있다. 2005년, 1회 젊은 여성연출가전 ‘SIX SEX’를 시작으로 올해 3회를 맞는 여성연출가전은, 신인 여성연출가에게는 등단의 장으로, 역량 있는 기성 연출가에게는 지속적인 활동의 장을 제공해 왔다. 1회 ‘SIX SEX’와, 2회 ‘SIX WEDDINGS’는 각각 여섯 명의 신인, 기성 연출가들이 참여해 작품 당 20~30분 정도의 단막극 형태로 기획되었다.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회현상과 성, 결혼 등에 대한 색다른 해석과 분석으로 많은 언론과 여성 관객의 관심을 모았다.

이번 <4 GO STORY>는 4인의 연출가들이 향하는 각기 다른 목표 지점을 의미하는 동시에, 4인의 작품들이 서로를 보완하고, 설화나 신화가 지닌 ‘이야기(Story)’의 연극성을 찾아나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처용, 오디세이, 정안나 연출>는 후대에 시(詩)의 형태로 남아 칭송되는 신화적 인물, 오디세이와 처용을 동일인으로 설정한 판타지적 발상을 토대로, 운명에 휘둘리는 남성의 비극과 그를 둘러싼 여성들의 삶을 추적한다.
오디세이를 사랑한 여신 칼립소는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며, 페넬로페는 밤낮으로 뜨개질을 하며 오디세이를 기다린다. 신라로 떠내려 온 오디세이, ‘처용’의 아내 미리 또한 처용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연극은 칼립소와 페넬로페, 미리(그녀에게는 처용의 아내일 뿐, 후대에 남겨지는 이름이 아무것도 없다)에게 기존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주체성을 발굴한다. 팜므파탈, 혹은 연약하고 수동적인 아름다움의 상징 페넬로페는 자신의 삶이 오디세이를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견디고 살아왔을 뿐’ 이라 역설한다. 그녀에게는 신화나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판타지가 없다. 그녀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악당과 맞서 싸우는 젊은 영웅들이 사랑한 것은 공주가 아니라, 공주의 남편이 가질 수 있는 남성적 권력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오디세이에 대한 사랑에 휘둘리며 고통스러워했던 칼립소는, 집착이 스스로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를 간파함으로써 자유로운 삶을 되찾는다. 처용에게 슬픔의 춤을 추게 한 처용 아내의 불륜사건(?)은, 미리와 신녀 마리의 달콤한 사랑일 뿐이다. <처용, 오디세이>는 정작 처용과 오디세이의 영웅담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한 영웅이 운명에 휘둘려 일그러지고 회복되는 과정의 나약한 인간성과, 그를 둘러싼 여성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이 오히려 유쾌하고 전복적이다.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는 것들에 대해 도전하는 페드라의 욕망을 그린 <히폴리투스의 말, 백순원 연출>, 이성애 가족과 아이를 키우는 레즈비언 가족의 삶을 동시에 녹여내며,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도전하는 <이상한 나라의 XX>, 연극배우가 되고자 하는 꿈과 평범한 삶을 강요당하는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30대의 여성과 가족 간의 갈등을 그린 <어쩌자고 서로 만나 알게 되었는가, 김수희 연출> 또한 기대해 볼 만하다.
제 3회 여성연출가전은, 2007년 3월 28일~ 4월 29일까지, 대학로 상명아트홀에서 열린다. <공연문의:02-741-4485>
이진주<국문·4>
pearl2891@hanmail.net
이진주 학우